전북

제 218차 덕유산 삿갓봉 산행기

힘날세상 2013. 1. 5. 22:58

제 218차 덕유산 삿갓봉 산행기

1. 일자 : 2013년 1월 5일 토요일

2. 동행 : 아내

3. 코스 : 황점 주차장(10:20) - 삿갓골재 산장(11:50 점심 50분) - 삿갓봉(1,418.6m 13:15) - 월성재

             (14:20) - 황점주차장(15:20)

4. 시간 : 5시간

5. 지도

 

 

6. 산길을 걸으며

 

남령을 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도로를 덮고 있는 눈이 얼어 붙어 거북이 걸음으로 겨우 황점 마을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휙 몰려 오는 바람, 바람 줄기 떼.

수없이 몰려드는 산악회 대형 버스.

갑자기 주차장이 소란스럽다.

서둘러 들머리를 잡는다.

 

 

 

 

 

눈덮힌 길을 걸어 삿갓재로 오른다.

골짜기에는 바람이 밀려 오지 못해 등에 내려 앉는 햇살이 정겹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방풍의를 벗고도 이마에 땀을 훔쳐내며 걷는다.

 

 

 

 

 

한 시간 반을 걸어 삿갓재 산장에 선다.

이 곳에 산장이 세워지기 전 한 사람을 살려 내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두 시간 이상 퍼부은 소나기를 맞으며

삿갓재에 텐트를 세우고 후배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삿갓봉을 정신 없이 내려서더니 황점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길을 가르쳐 주는데 일행 중 한 명이체력이 소갈되었는데

먹을 것을 좀 나눠달라고 한다. 잠시 후 3명의 동료들에 의지하여 도착한 사람은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졸리다며 자고 싶다며 비에 젖은 땅바닥에 드러 눕는다.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산>에서 읽은 저체온증이 떠올랐다.

급한대로 텐트 위에 쳐 두었던 비닐을 벗겨 온 몸을 감싸 보온을 하고

따뜻한 물과 초콜릿, 식빵을 먹게 했다.

넷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물병 하나 달랑 들고 황점에서 월성재로 올랐는데 월성재에서 소나기를 맞은 것이다. 비가 멎고 불어온 바람에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한참 후 기운을 회복하여 그분들은 황점 마을로 내려가고 우리는 한 여름밤을 수놓은 별빛 속에서 덕유산의 밤을 맞이했다.

그런데 지금은 산장이 세워지고 많은 산객들의 훌륭한 쉼터가 된 것이다.

 

취사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좁은 취사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이다. 이런 와중에도 고기를 굽고 심지어 커피까지 끓여 마시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산에 오르면서 점심 한끼 가볍게 먹으면 어떨까.

배낭 속에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엄청 먹어대고, 거기에 술은 왜 그렇게 많이 마시는지.

 

 

 

 

 

 

 

  

 

서둘러 삿갓봉을 오른다.

살을 에는 듯이 몰아치는 바람이 매섭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싸맸기에 마치 방안에 있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니 뽀송뽀송한 느낌이 참 좋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안락감과 눈의 호사(豪奢).

이것이야말로 겨울 산에 오르는 참 맛이 아닐까.

 

무룡산을 일으키며 향적봉으로 달려나가는 근육질의 산등성이는

바람 한 줄기 담고 있지 않는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지금 덕유 능선을 넘는 바람은 혹독하리만치 날카롭다.

남덕유와 장수 덕유산 역시 아무 말 없이 서 있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군단에 맞서고 있는 산객들 눈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웅자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폭탄을 맞은 덕유산.

이정표도 허리까지 잠겨 버리고

한 사람 지나갈 길이 겨우 열려 있는 산길을 걷는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 얼굴을 감싸고 아무 말도 없이 걷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 아름다운 겨울 산의 이야기를 다양한 모습으로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치있는 의미를 이끌어 내지 않을까.

혹독한 바람과

발밑에서 부저지는 눈길에서

사람들은 느낌있는 걸음을 걷지 않을까.

 

 

 

 

 

 

월성재.

바람이 가라앉은 고갯마루에서

일단의 산객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문득 상불재님이 생각난다.

산길에서 시심(詩心)을 일으키고 다독거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상불재님의 산행기는

홀로 걷는 산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분을 바로 이 월성재에서 만났다.

어쩌면 눈 덮힌 덕유산 어느 골짜기를 걷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남덕유를 올라 남령으로 내려서려던 걸음을 돌려 세운다.

하산 시각이 늦을 경우 차를 몰아 남령을 넘어갈 일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 봉우리를 올라가는 것보다

산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 안겨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고

하찮을지라도 생각을 다독여 보았으면

하나의 산행으로 가름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산으로 들어서는 까닭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산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회의감에 빠져 있다.

나를 위한 기록인가.

남을 위한 기록인가.

 

얼마전 상불재님의 홈피에서

산행기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글을 읽으면서

'왜 저런 생각을 하실까?'하며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요즈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바람골을 따라 내려서며

산행의 기록을 이런 블로그에 올려 놓는 일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을 키워 보지만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황점 마을에 이르렀다.

 

 

                                                         겨울 산을 제대로 걸어본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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