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 4 일 2012년 02월 19일 일 옥룡설산
어젯밤에 잠이 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2시가 다되어 잠깐 눈을 붙였는데도 6시가 못되어 일어났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호텔 조식은 형편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국 여행을 했고 호텔식을 많이 먹어 봤지만 이렇게 초라한 식사는 없었다. 그래도 설산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여 먹어둔다.
호텔 로비에 나와 와이파이를 켜 놓고 페북에도 글을 올리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기다리다가 7시 30분에 출발한다. 버스로 약 30분 정도 달려서 옥주경천 마을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원주민 옷을 입은 남자들이 춤을 추며 환영을 해준다. 같이 끼어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그들이 왜 우리를 환영해주는가. 자기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니까 그런 것인가. 그들의 얼굴에 진실성까지 찾아보기는 어렵더라도 즐거운 얼굴로 환영을 해주는 것은 틀림없다.
이어서 말을 타고 내리는 시범을 보이더니 곧바로 출발이다. 입장표를 나누어 주더니 마부를 배정한다. 덩치가 큰 남자 마부가 배정되었다. 말도 제법 큰 말이다. 아내는 아주 작은 말이 배정되었다. 영화에서만 보았지 말을 직접 타보기는 처음이다. 말을 타고 가는데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드라마에서 볼 때 말을 탄 장수들이 름름하게 보였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환영해 주는 동네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옥룡설산
폼은 그럴듯해도 엄청 긴장해 있을 것이다.
마을을 빠져 나가는 행렬
말을 탄 행렬은 마을을 통과하고 나더니 들판을 가로질러 이윽고 산 속으로 들어선다. 30여분이 지날 무렵이 되어서는 여기 저기 사진 촬영도 하는 등 여유가 생긴다. 완만한 오르막이라서 그렇게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오르더니 말에서 내리라고 한다. 길이가팔라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약 100여 미터를 올라가니 쉼터다. 물도 마시고 쉬어 간다. 마부 중에는 10살짜리 소년부터 20대 청년이 둘, 아주머니들이 셋 그리고 장년 남자가 넷이다.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시끄럽게 말을 하는지 신경이 쓰인다. 처음부터 전죽림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다시 말을 타고 출발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옥룡설산에 매료되어 사진기를 들이대다 보니 널찍한 들판에 도착했다. 마황패(螞蝗狈)다. 옥룡설산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말에서 내려 한참을 쉰다. 이런 들판이라면 한바탕 말을 달려 보고 싶다.
만약에 눈이 많이 왔으면 이곳에서 전죽림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했던 지점이다. 다행이 눈이 오지 않아서 전죽림까지 말을 타고 오르기로 한다. 일단은 10여분 정도 걸어야 한다고 한다. 걷는 것이 더 좋다. 그도 그럴 것이 엉덩이가 아파서 말등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10여 분 올라가다가 다시 말에 탄다. 제법 경사가 급한 길을 '갈지자'로 올라간다. 제법 긴장감이 돈다. 뒤에 따라오는 아내가 탄 말은 대여섯 걸음 걷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비루해 보이는 것이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덩치가 큰 남자가 탔으면 퍽 말이 고생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처음에 말을 배정할 때 사람의 덩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순번대로 태운다는 것이다. 말들이 힘들어서 자주 걸음을 멈추곤 한다. 잠깐이라도 풀을 뜯는 것을 보면 배도 고픈 모양이다. 말이 무슨 죄란 말인가. 이렇게 힘든 고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마부들이야 돈을 버니까 그런다고 해도 말은 제대로 얻어 먹지도 못하면서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마황패에서 본 옥룡설산
마황패 모습
옥룡설산을 뒤로 하고
아내가 탄 비루한 말
가파른 길을 올라 3,670미터 전죽림에 도착한다. 지붕을 설치해 놓은 간이 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물을 끓여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그들이 내놓은 점심은 김밥+오렌지+사과+당근+토마토+오이+커피가 전부다. 한마디로 부실하다. 마부들이 준비해 준 음식은 놓아두고 호도트레킹 여행사에서 준비해준 쌀떡국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산악 가이드가 앞장을 선다. 가이드를 따라가는데 길은 급격히 가팔라진다. 작은 돌이 깔려 있는 길이 가파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행히도 고소증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맨 앞에 서서 가는 가이드 뒤에 산내음님이 뒤따르고 우리 부부가 그 다음이다. 뒤를 돌아보니 푸른 산빛님과 디딤돌님이 우리 뒤에서 고도를 높이고 있다.
전죽림에서 점심식사 모습
점심식사
앞장 서서 가고 있는 산악 가이드. 장갑도 없었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설산의 모습
길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고소증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천천히 한걸음씩 올라가라는 말을 상기하면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없다. 아내도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천천히 걷는다. 앞장 선 가이드와 산내음님이 금방 잡힐 것 같은 거리에 있는데도 쉽게 따라 갈 수가 없다. 사방이 눈이고 험상궂은 바위 산이 우뚝 우뚝 솟아있다. 거기에다 바람은 왜 그렇게 세게 부는지 모르겠다.
이 나무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열린다.
보기엔 별 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악' 소리 날만큼 가파르다.
가파른데다가 잔 자갈길이어서 미끄럽기가 그지 없다.
중초평으로 가는 길은 올라갈 때도 힘들고 내려 올 때도 힘들었다.
중초평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잔 자갈이 깔려 있는 곳으로 가파르기가 그지 없었다. 발을 내디디가 어려울 정도다. 거기에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서 힘들게 올라간다. 좌우로 펼쳐지는 눈 덮힌 설산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 60이 다되어 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걸어보는 눈 덮힌 산을 걸어 올라간다. 눈이 덮힌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는 기분과는 전혀 다르다.
중초평으로 오르는 길
중초평 오르는 길은 완전한 눈밭이다. 완만하게 보여도 실제로 걸어보면 만만하지 않은 오르막이다.
눈은 무릎이 넘게 쌓여 있는데 발이 빠지지는 않는다. 도중에 스페츠를 하기는 했지만 그냥 올라간 분들도 있다. 아이젠은 정말 필요 없다.
뒤돌아 보니 이렇게 경사가 심하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찍은 사진이다.
중초평으로 오르는 아내.
중초평 정상인 선자두주봉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중초평을 지나고 있는 아내
앞서 가는 가이드.사진 오른쪽 위 노란색 간판이 있는 곳이 4,900미터 녹설해다.
녹설해로 오르는 길. 이 부근에 눈이 많아 이곳에서 스페츠를 찼다. 그러나 다져진 눈이라서 깊이 빠지지 않았다.
녹설해로 오르는 길
녹설해에 거의 다 왔다. 그러나 30여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빤히 보여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녹설해에서 뒤돌아 본 봉우리.
해발 4900미터 녹설해
녹설해에 올랐다. 3,670미터 전죽림을 출발한 지 2시간만이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고도를 1,200미터를 올리려고 보니 가파르기가 말할 수 없었다. 녹설해. 거긴 능선이었다. 그러니까 전죽림에서 산 사면(斜面)을 걸어 올라와서 이곳 녹설해에서 능선에 서는 것이다. 그런만큼 바람이 말할 수 없이 거세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버프를 올린다. 방풍의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린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이다. 가이드는오후 3시가 되면 무조건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아내에게 상태를 물으니 숨이 가쁘기 시작하고 다리가 안떨어진다고 한다. 잔머리를 굴린다. 이대로 가다가는 둘 다 정상에 올라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내에게 먼저 올라간다고 말한다. 아내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앞에 간 가이드와 산내음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그러나 전혀 숨이 가쁘거나 힘들지 않다.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간다.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지점에서 산내음님을 만난다.
녹설해에서 뒤돌아 본 중초평. 가운데 움푹한 곳 아래이다.
가야할 정상 선자두주봉을 뒤로 하고
이 사진 찍고 아내를 추월하여 앞서 간다.
아내와 이별하고 혼자서 정상을 향한다. 이쯤에서 아내는 고소증세에 짓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상 선자두주봉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본 오른쪽 봉우리. 아마 이곳이 호도협 트레킹에서 장선생 객잔으로 내려서면서 본 마지막 봉우리인 것 같다.
정상!!
지독한 바람과 함께 견딜 수 없는 허무감이 감돌았다. 거창하게 펼쳐지던 무협지의 마지막을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불과 100여 미터에 망설봉 대협곡이라고 써 있는 곳까지 가야 하건만 가이드는 안된다고 한다. 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시간은 2시 30분밖에 되지 않았고 충분히 다녀 올 수 있는 시간이지 않는가. 가이드가 가기 싫어 그러는 것으로 판단하고 '너는 여기 있어라, 나는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절대 안된다고 한다. 바람도 많이 불고 중간에 눈이 많이 쌓여서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가이드와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산내음님이 올라왔다. 상황을 설명하니 의외로 산내음님은 바로 물러선다. 가이드 말을 따르자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가이드에게 사정을 해보지만 막무가내다.
허탈. 그랬다. 허탈감이었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아직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처녀봉 옥룡설산 선자두주봉을 실컷 바라본다. 돌아 보니 아내는 우리 발 아래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어쩌랴 되돌아 내려가야 하는 것을.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아내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올라오면서 여러 번 토했다고 한다.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정상 직전에서 뒤돌아 본 모습.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옥룡설산 선자두주봉(5,600m)
눈이 쌓여 있는 절벽. 스틱으로 재보니 2미터 70 센티 정도된다. 만약에 스틱 있는 곳을 밟았다면 눈 구렁텅이 빠진다고 가이드가 기겁을 하며 말린다.
정상으로 불리는 망설봉 대협곡. 사진 중앙의 우뚝 솟은 바위.
망설봉 대협곡을 뒤로 하고 기념 촬영. 뒤에 바위에 새겨진 붉은색 글씨와 노란색 안내판이 보인다.
하산하면서 본 올라온 길. 벌판 뒤가 여강 시내이다.
아내는 여기까지 올라왔다.
아쉬움을 달래며 하산을 하게 된다.
녹설해를 지나오며
중초평에서 전죽림으로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가파르다.
고사목 지대를 지나면 바로 전죽림이다.
정상에서 하산은 의외로 빠르게 내려온다. 현지 시간으로 2시 50분에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돌아선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까 경사가 장난이 아니게 가파르다. 녹설해를 지나고 중초평을 지나 고사목 지대를 지나니 전죽림이다. 전죽임네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20분이니 하산에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인 셈이다.
중간에 내려간 네 분은 먼저 옥주경천으로 내려갔고 남은 여섯이 내려가게 된다. 그래도 조금 먼저 내려온 아내와 푸른 산빛님과 셋이서 말을 타고 하산을 시작한다. 내가 탄 말의 마주가 맨 앞으로 나서더니 빠른 속도로 하산한다. 올라올 때 가파르다고 말에서 내려서 걸었던 곳도 막무가내로 내달린다. 중간에 말이 힘들어 걸음을 멈추어도 사정을 두지 않고 고삐를 잡아 챈다. 엉덩이가 너무 아프고 가파른 길인지라 몸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 힘들다. 거기에다가 앞에 가는 마부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댄다. 그렇지 않아도 하산하면서 느낀 고소 증세에 머리가 아픈데 담배 연기까지 맡고 보니 정말 죽을 맛이다.
처음 말을 탄 곳까지 내려 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여강 시내로 들어와 커다란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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