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 3 일 2012년 2월 18일 토요일 차마객잔 - 중도객잔 - 장선생객잔 - 중호도협 - 여강고성
6시. 바람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옥룡설산은 짙은 구름에 싸여 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 달리는 바람이 제법 힘이 넘친다.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는다. 어제 먹은 오골계 백숙 국물로 끓인 닭죽과 볶음밥이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바람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다.
8시 10분 트레킹 둘째날 첫발을 디딘다.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방풍자켓을 입고 걷는다. 차마객잔이 있는 영승촌(永勝村) 마을이 고요한 아침에 젖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객실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막 세수를 하고 나온 어린 아이 얼굴 같은 모습이다.
뒤돌아본 차마객잔
바람은 불었어도 분위기는 상큼했다. 어디서나 아침 일찍 시작하는 산행은 산뜻해서 좋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아침 트레킹은 산뜻해서 좋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갑게 느껴지던 바람이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깊게 패인 금사강(金沙江) 너머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옥룡설산과 우리가 허리를 밟아가는 합파설산이 풋풋한 살결을 드러낸다. 일행과 약간 떨어져 느긋한 마음으로 걷는다. 산행을 할 때마다 난 사람들을 뒤로 하고 걷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뒤에서서 걷는 편이다. 그것은 어쩌면 삶의 태도일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발걸음을 조절하는 산행 방식을 나는 즐겨하는 것이다.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태도 등을 보면서 걷다보면 참 다양한 모습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일은 참 재미나는 일이다.
발 아래로 흐르는 금사강
좋은 풍경을 담으려고 애쓰시는 산내음 님
세상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은 모든 압박과 시름에서 벗어나고 볼 일이다
스틱을 의지하여 촬영하시는 푸른 산빛님
옥룡설산과 한 몸이 되어보려는 것은 욕심일 뿐인가.
옥룡설산이 만들어내는 협곡의 깊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걷는가. 앞에 가는 중국인 젊은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산들을 수없이 걷고 걸었건만 무엇이 부족하여 호도협의 옛길을 걷는다는 말인가.
가다가 걸음을 멈추는 일도 걷는 일 중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가끔 이러한 정보를 만난다. 여강(LiJiang)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아닌가.
1시간 30분 정도를 걸었을 때 참 평안한 마을이 나타난다. 중도 객잔(Half Way Guest House)이다. 이곳의 화장실에서 보는 옥룡설산의 모습이 최고라는 말을 다른 분들의 답사기에서 여러 차례 읽었던지라 기대가 아주 컸다. 중도객잔은 놀랍게도 꽃이 핀 나무들과 더불어 우리를 맞아 주었다. 2월에 보는 꽃은 무엇인가. 복사꽃은 분명한데 벚꽃은 기연가미연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랴. 발 앞에 펼쳐진 푸른 빛깔은 봄이 오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거늘
객잔에서 제공하는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뜨거운 찻물을 넘기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막아서는 옥룡설산을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옥룡설산이 있기에 사람들이 찾아 오고 또 그 사람들 덕분에 먹고 사고 있으니 옥룡설산이 먹여 살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들은 권태를 느끼지 않을까. 문득 이상이 쓴 <권태(倦怠)>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시골에 가서 생활한 지 일 주일이 지나자 자신의 주변이 온통 초록인 것에 심한 권태감을 느낀다는 수필을 읽고 공감했던 적이 있다.
그럴 것이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저 기묘하고 웅장한 설산에 심한 권태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는 답답함에 짓눌려 대처(大處)로 달아나버렸음직도 하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권태감은 인간의 삶의 방정식의 해답을 여러가지로 만들기도 한다. 만약 우리에게 권태감이 없다고 가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는 이러한 권태감이 우리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객잔의 지붕에 마련해 놓은 관망대에 올라가서 설산을 감상하면서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찬사를 모두다 터트려 놓는다. 와! 아름답다! 환상적이다! 죽인다! 정말 미치겠다! 각각의 사람들이 각각의 느낌들을 토해 낸다. 그랬다. 한 번도 이러한 풍광에 젖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감탄은 자연스러운 토로(吐露)가 아닌가.
문득 중도객잔의 화장실 생각이 났다. 식당 옆 계단을 내려가니 화장실이다. 화장실 입구에 '천하제일 화장실 세계공인'이라고 써 있다, 그러나 옥상의 관망대에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다만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광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이기에 그러한 명성을 얻었나 보다.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가. 어린 시절 지평선이 바라보이던 시골집 화장실도 내가 보기에는 천하 제일이 아니었을까.
중도객잔의 모습. 호도협 트레킹에서 만나는 객잔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옥룡설산과 가장 가까이 있었다.
중도객잔 관망대에서는 옥룡설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중도객잔의 화장실. 정말 천하제일의 화장실일까. 세계 공인이라고 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은 공인될수는 없을 것이다.
3,000 미터가 가까운 이곳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중도객잔의 식당. 이 곳도 천하 제일의 식당이라는 찬사가 붙을 만하지 않은가.
중도객잔을 나선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여정은 무엇일까. 어떤 이야기를 담은 길이 이어질 것인가. 미지의 세계를 걷는 기대감이 잔뜩 밀려왔다. 객잔을 나서자 여느 객잔처럼 마을이 이어진다. 영화에서나 에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에 찬사를 보내고 있을 즈음 마을을 관통하게 된다. 몇몇이서 집을 짓고 있다. 이곳의 집은 1층은 돌을 쌓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2층을 짓는 방식이다. 갑자기 새끼 돼지들이 뛰어 다닌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 사는 것은 어디다 똑같다.
1992년 중국과 수교가 되기 이전에도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았을 것이다. 눈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실은 사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침대 시트를 빨아 널고 있는 객잔의 아가씨
객잔 주변의 농가의 모습. 대부분 ㅁ자 형태였다.
뒤돌아본 중도객잔의 모습. 사진 왼쪽 끝. 도로가 이어져 있다.
귀여운 새끼 돼지들
건축중인 집. 앞면
뒷면. 돌을 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방식이다.
중고객잔을 나서 몇 굽이의 길을 돌아간다. 일행들은 앞서 갔고 아내와 둘이서만 걷는다. 낯선 감정이 아니라 어디 모악산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다. 그만큼 호도협 트레킹에 익숙하게 젖어들었다는 말이다. 아침을 충분히 먹지 않았지만 10시 30분이 지난 시간인데도 간식도 먹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물만 마실 뿐이다. 자연의 경치가 좋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힘들지 않은 트레킹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30분을 더 걸어 관음폭포에 닿는다.
30미터 거리에 오지산 객잔이 있다는 표지인데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막상 현지에서는 객잔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이것이 여행자의 눈이란 말인가.
굽이들 돌고
또 굽이를 돌아간다. 인생도 그런 것일까
오늘 트레킹의 신선함을 더해주었던 관음폭포. 원래는 관세음 폭포인데 중국의 군사지도자이며 청말(淸末)의 개혁파로서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을 지냈던 위안스카이(원세계)의 이름인 '세'자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뺐다고 한다.
관음폭포는 정말 신선했다. 그 높이가 대단하기도 했지만 폭포가 산굽이를 돌아가는 길 위로 직접 떨어지기 때문이다. 길 위로 떨어지고 나서도 다시 길 아래로 그 만큼 더 떨어지는 관음폭포. 한 여름 트레커들에게는 청량제와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으리라. 손을 적셔 보니 차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지 않은 수량이 주변에 켜켜이 쌓여 있던 고요와 나타를 한꺼번에 쪼개내고 있었다. 폭포는 힘이 있다. 떨어지는 힘으로 세상의 잘못되고 비뚤어진 것들을 부숴버리는 힘이 있다. 문득 김수영의 <폭포>라는 시가 생각난다.
폭포(瀑布)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을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은 폭포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가. 사람들은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곧은 소리'로 떨어진다는구절과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을 듯이'라는 구절을 발판으로 저항적인 노래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라는 구절에서 김수영은 폭포의 아픈 절망감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한다. 목표가 없는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일까. 행여 이러한 것은 김수영이 전쟁중에 겪었던 아내와의 아픈 사연(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국군에 체포되었다가 돌아와보니 아내는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어 있었고, 김수영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내는 다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김수영과 살았다고 한다.)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힘차게 떨어지는 관음폭포는 주변의 고요와 적막, 그리고 내 가슴의 나타(懶惰)를 속시원히 때려 부시고 있었다. 이틀째 반복되어지는 트레킹의 일상을 뒤집어 놓는 변화를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걷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관음 폭포를 지나면서부터는 장선생객잔까지 내리막길이다. 발아래 객잔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도 제법 급경사길을 한 시간을 내려서고 나서야 장선생객잔에 도착했다. 장선생객잔이라는 이름은 이 동네에 살던 장선생이라는 사람이 이 동네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마을 사람들이 그 공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장선생 객잔에서 중호도협의 강물까지 내려가는 길도 장선생이 개척했다고 한다.
관음폭포를 지나면 이런 오금이 저리는 절벽을 지나게 된다. 옛날 말을 타고 지나다녔던 사람들은 어떻게 다녔을까.
아직도 바람은 거세게 불어 왔다.
마지막 한 굽이 오르막길이다.
오른쪽 아래에 장선생객잔이 보인다.
도로로 내려서면서 호도협 트레킹은 끝이 난다.
돌아본 금사강. 오른쪽의 도로는 장선생 객잔에서 치아토우로 이어지는 길이다. 트레킹하는 도중에 간간히 보인다.
장선생 객잔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리고 배낭을 맡기고 급경사길을 내려가 중호도협으로 이동한다. 중호도협은 사냥꾼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강에 있는 바위를 딛고 건너 뛰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곳으로 호도협(虎跳峽)이란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수없이 많은 중국 여행객들과 아울어져 중호도협으로 내려간다. 가이드가 내려갈 때 30분 올라올 때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막상 내려가보니 쉽지 않았다. 중간 중간의 몇 개 좌판을 벌인 가게를 지나 중호도협에 도착했다. 옥빛의 강물이 거세세 흐르고 있었다. 호랑이가 딛고 건너 뛰었다는 바위에 중호도협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돌이 서 있었다. U자형 협곡이었다. 지형을 보면 바위를 딛고 건너뛴 호랑이는 건너편 절벽에 부딪혀 강물에 떨어졌을 것이다. 다시 되돌아 올라오는데 중간에서 같이 가신 선생님들이 음료수 한 캔을 권하여 마신다. 우리나라 식혜맛이다. 돈이 모자란다고 하여 물어보니 한 캔에 10위안이다. 올라올 때는 쉽게 올라온다. 40분 정도밖에 걸리지않았다. 객잔에 맡겨 놓은 배낭(가이드가 지키고 있었다.)을 찾아 미니밴을 타고 치아토우로 돌아온다. 굽이가 심하고 왼쪽이 까마득한 절벽인데도 운전사는 막무가내로 달린다. 천천히 가자고 했으나 그것이 가장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중호도협으로 내려가면서 본 협곡
그 가파른 길을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정말 좋은 계곡. 위 다리는 장선생 객잔에서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다.
호랑이가 딛고 건너 뛰었다는 바위
이렇게 깊은 협곡이다.
음료를 팔고 있는 어린이. 핸펀으로 가지고 놀고 있다.
치아토우에서 25인승 전용버스를 타고 여강 고성으로 간다. 오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지만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라는 호도협 트레팅에 대한 감동을 안고 돌아가는 길이기에 마음이 가볍고 흐뭇하다. 느릿한 몸놀림으로 굽이지는 옥빛의 금사강의 춤사위는 어느때 쯤이나 잊혀져 갈까. 어제 쉬었던 휴게소에서 멈추어 작은 귤을 사 먹는다. 1근에 5위안이라고 한다. 50위안을 주고 10근을 산다. 입안에 달콤한 과일 향이 가득하다.
버스는 힘겹게 고개를 넘는다. 왼쪽으로 내일 오를 옥룡설산의 웅자(雄姿)가 이마에 흰 눈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마음 속으로 다가온다. 어느 때고 운남성을 다시 찾을 일이 있을 때, 호도협의 금사강서껀 눈 덮힌 옥룡설산을 다시 한 번은 찾을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도 있지만, 예전에 담아 두었던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값진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닐까.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여강 고성
'여강의 베네치아'라고 부른다는 여강 고성의 수로
여강 고성의 중심지 사방가(四方街).
고성에 써놓은 동파문자. 동파문자는 나시족이 사용하던 상형문자이다.
여강 고성의 모습. 이 사진 찍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 입장료가 1인 80위안이라서 입장을 포기하고 어렵게 찍었다.
고기를 널어 놓은 음식점
저녁식사를 한 한식점 벚꽃 마을
벚꽃마을 건너편에 있는 술집 2416
벚꽃마을 내부
삼겹살과 불고기
어느덧 버스는 여강 고성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긴 한데 모든 건물이 물건을 파는 상점이다. 여강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들 이 곳 고성을 찾는다. 그래서 여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고성의 중심지인 사방가에서 자유시간을 누린다. 우린 고성의 전체를 내려다 보기 위해 조망대로 올라가기로 한다. 막상 가보니 입장료가 1인 80위안이고 또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입장을 포기하기로 한다. 다행이 입장료를 내기 직전에서 어떻게 조망이 되는 곳이 있어 사진을 한장을 찍는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사방가로 돌아온다. 바로 옆 식당인 벚꽃마을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식당은 엄청나게 큰 규모였는데 시끄러운 음악이 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술집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 삼겹살과 불고기로 저녁을 먹는다. 김치찌개며 된장찌개도 나왔지만 어딘지 2% 부족한 느낌이다.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소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먹는 밥은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건너편 2416이라는 상호를 달고 있는 술집에서 쏟아지는 소음까지 더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사방가에서 본 고성의 야경
원주민들이 벌이는 사방가에서 벌이는 놀이. 아무나 끼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다.
고성 앞 거리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사방가에서 어울림 마당이 펼쳐진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여러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어울어져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며 놀고 있다. 같이 가신 선생님들도 합석하여 즐거움을 만끽한다. 손에 손을 잡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흥겨운 얼굴들이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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