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12 운장산 - 구봉산 종주 산행기

힘날세상 2009. 9. 29. 11:55

12. 운장산-구봉산 종주(전북 진안)

 

 

1 일자 : 2006. 5. 13 일

2 인원 : 군수님 부부와 우리 부부

3 코스 : 피암목재(08:40) - 서봉(09:50) - 운장산(10:27) - 동봉(10:53) - 각우목재(11:37) - 1084봉(12:19 점심식사 25분)) -   

            복두봉(13:47) - 구봉산(14:52) - 양명주차장(17:08)

4 시간 : 08 : 40 - 17 : 08 (8시간 28분)

5. 산행지도

 

 

6. 산행기

 

1. 프롤로그

햇살이 살고 있었다. 담록의 숲을 따라 운장산으로 들어서는 산자락에는 햇살의 소곤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8시라고는 하지만 이미 농익어 버린 해는 운장산에서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초여름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피암목재를 들머리로 삼아 산행에 나서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제법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다. 워낙에 가까이 지내는 안지점장 부부와 같이하는 산행인 까닭이다. 이웃사촌이라고 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형제만큼이나 정을 나누고 지내는 사이라 초입부터 목소리가 높다. 들어서는 산객(山客)들이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간간이 아침의 신선함을 풀어 놓는 바람을 끌어안으며 하하호호하며 산뜻한 기분으로 등산로에 들어섰다.

금남정맥을 밟아가는 발걸음에 힘이 느껴진다. 왼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내처사동이며, 운일암 반일암의 골짜기에 가득 담겨 있는 짙은 푸르름에 눈길을 던지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검태계곡을 거슬러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산행의 묘미를 만끽한다.

 

느린 걸음을 재촉할 것도 없이 발걸음이 떨어지는 대로 올라가는 산행은 여유가 있어서 좋다. 바라보는 곳마다 이제 막 잎을 피우고 있는 담록의 향연이요,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싹들의 행렬은 그렇지 않아도 느린 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구봉산까지 종주해야 하는 산행이기에 좀 서둘러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산줄기에 빠져버린 안지점장은 마치 소녀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어쩔 줄 모른다.

“형, 오늘 산행은 참 풍요로울 것 같은데?” 서봉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던 안지점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이 준비해온 것이 뭐가 있다고 풍요를 말해?” 안지점장 사모님이 핀잔을 준다.

“글쎄, 적어도 8시간 가까이 걸어야 할 것인데 풍요를 말할 수가 있을까? 고통이라면 몰라도”

“형은 그게 문제라니까. 연석산에서 이어져 운장산을 솟구치고 피암목재를 건너 장군봉 너머로 이어지는 금남정맥의 줄기를 보면서도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한단 말야? 산 좀 다녔다는 사람이 어찌 그런 느낌이 없을까?”

안지점장 말을 들어 보니 힘차게 뻗어나가는 마루금이 불끈 솟아오른 핏줄마냥 다가온다.

운장산은 그만그만한 3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금남호남정맥을 따라 흐르던 산줄기가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결별하고 방향을 돌려 연석산을 거쳐 피암목재로 이어져 금남정맥으로 뻗어나가는데, 운장산의 서봉이 험상궂은 바위 봉우리를 치켜세우며 금남정맥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봉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남으로는 만덕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꿈틀거리며 달려나가고 있고, 북으로는 피암목재를 건넌 금남정맥이 장군봉을 일으켜 세우며 대둔산으로 이어져 도도하게 흐르고 있으며, 동으로는 복두봉을 발판으로 구봉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산이 있어 행복한 것일까? 산 속에 묻혀 버리는 즐거움은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최치원의 싯구절이 떠오른다.

 

狂奔疊石吼重巒(광중첩석후중만)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 최치원,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세상에서 들려오는 속세의 시빗거리를 물소리로 막아버렸다는 이 기막힌 정서에 젖어 사방으로 조망(眺望)되는 아름다운 산하(山河)를 보며 여기저기 감탄사를 늘어놓다 보니 모두들 중봉으로 가버린 것이 아닌가? 속세를 등지고 살았던 최치원 선생의 삶의 태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며 발걸음을 옮겨 구봉산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따라 나선다.

중봉을 지나 운장산 동봉에서 바라보니 서봉에 올라선 산객(山客)의 그림자가 산줄기의 멋을 더하고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실루엣이 사진에서나 보는 것처럼 고고한 느낌이다. 홀로 산에 오르는 기분을 익히 알고 있기에 지금 서봉에 홀로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는 산객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번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한마디 한다.

“좀 갑시다. 여기저기 한눈만 팔지 말고”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렇게 미치도록 아름다운 산하를 두고 어찌 그렇게도 발길을 재촉하려한단 말인가. 사실 속으로는 구봉산까지 가야하는 낯선 길을 남겨 두고 있기에 좀 서둘러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산줄기의 장엄한 노래에 빠져 들고 보니 조금 전까지 발길을 재촉해야한다는 생각을 하였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동봉을 지나면서 길은 저 밑으로 보이는 각우목재를 향하여 급경사로 떨어진다. 밧줄에 매달려 내려서는 구간을 만난다. 지금까지 잘 사용해오던 스틱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안지점장 사모님이 스틱을 내팽개친다. “이거 불편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아무렇게나 내던진 스틱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리고 만다. 넷이서 모두 바위 절벽을 내려가 스틱을 회수하는데 깎아지른 절벽에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황금리에서 시작하는 골짜기를 넘어 외처사동으로 넘어가는 각우목재에 내려서 만난 것은 오직 고요함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비치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올라간다.

 

한바탕 된비얄을 치고 오른다. 한낮의 태양빛 속에서 오르막을 치고 오로는 일이 쉽지 않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능선에 선다. 1084봉이다. 봉우리에 누군가의 묘가 하나 있다. 누군지 몰라도 죽어서도 높은 봉우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이 부럽기도 하다. 주변의 조망이 너무 좋아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니 묘 옆에서 밥을 먹으려 하냐며 핀잔이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무덤을 꺼려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 밑으로 헬기장이 내려다 보여 그곳을 식탁으로 생각하고 내려갔으나 여건이 썩 좋지 못하다. 조금 더 내려서니 멋진 소나무가 서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뭇그늘에 앉아 즐겁게 히히덕거리며 식사를 한다. 오늘 산행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 교육문제, 가족 문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다음 주에 있을 지리산 무박 종주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간다. 종주 경험이 없는 안지점장님 사모님과 우리 마눌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별것도 아니라고 안심을 시키고 앉은 자리를 흔적도 없이 정리하고 일어선다.

저 앞에 복두봉이 보인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희미한 임도가 마중 나온다. 불과 10분도 못되어 임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에 선다. 운장산 휴양림에서 주천으로 넘어가는 한가로운 길이다.

“베낭을 벗어놓고 한달음 달렸으면 좋겠네.” 주제 파악도 못하고 아내가 한마디 하자. 모두들 금방이라도 달리기를 할 태세다.

육십령에서 남덕유를 올라 영각사로 하산하고 나서 차를 주차한 육십령까지 달리던 생각이 난다. 거추장스러운 배낭을 메고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달리니 가을걷이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바라본다. 그래도 대략 5km 정도를 달렸는데 먼저 차를 얻어타고 간 안지점장이 차를 가지와 달리기를 멈췄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산으로 들어선다. 복두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는데 한 산객이 나물이며 고사리가 가득 담긴 비닐 봉지를 들고 온다. 이것을 본 두 아줌마들은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식사 후에 고사리 몇 가닥 끊었는데 다른 사람이 채취한 양을 보더니 탐욕에 젖어드는 것이다. 서둘러 북두봉에 오른다. 익산에서 왔다는 분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차를 구봉산에 두고 와서 일부는 운장산쪽으로 가고 나머지는 되돌아서 구봉산쪽으로 간다.

오늘 산행 내내 환상적인 조망을 제공하였던 산줄기는 여전하다. 가까이 구봉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저 멀리 마이산이며 그 너머로 덕태산이며 팔공산이 보인다. 저 멀리 덕유산도 아스라이 모습을 들이민다.

 

바람이 제법 불어온다. 서둘러 구봉산으로 향한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으나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몇 굽이 오르내리고 나서야 구봉산 정상이다. 하산길을 구봉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정하고 내러서는데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다. 밧줄에 매달리기 시작하자 여자들 입에서 기성이 나온다.

“너무하네요. 이런 곳으로 이끌다니.”

“다시는 여기 오지 않을 거야.”

어차피 구봉산이야 바위산이니까 9개의 암봉을 다 내려갈 때가지 밧줄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암봉마다 내려다 보이는 용담호의 절경과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에 매료되어 힘든지도 모르게 1봉을 내려선다. 이제 잠시만 다리품을 더 팔면 주차장이다.

언제나 산행을 마칠 때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럴 때 혼자서 산행을 하면 길을 아껴가며 걷는다. 흩어진 마음을 정리해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쿨다운을 통하여 긴장한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내려서는데 어느덧 주차장이다.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린 안지점장님의 애마가 느긋한 눈길로 우리를 맞이한다.

8시 40분에 산에 들어서 산을 나온 시각이 17시 10분이니 총 8시간 30분을 산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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