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지리산 산행기
1. 산행일자 : 2009년 09월 06일 (일)
2. 동행 : 촌장님
3. 산행코스 : 거림(07:45) - 이정표(08:15 거림 1.3k/세석 4.7k) - 이정표(08:40 거림 2.4k/세석 3.6k) - 다리(08:50) - 폭포(09:00) - 북해도교(09:10 이정표 거림 3.2k/세석 2.8k) - 바위 전망대(09:45) - 세석교(09:56 이정표 거림 4.7k/세석 1.3k) - 의신 갈림길(10:15) - 세석 대피소(10:25 휴식 10분) - 촛대봉(11:00) - 연하봉(12:10) - 장터목(12:25 점심 35분) - 통천문(13:45) - 천왕봉(14:05 10분 휴식) - 개선문(14:40) - 법계사(15:12 13분 휴식) - 망바위(15:48) - 장터목 갈림길(16:08) - 칼바위(16:11) - 중산리 탐방지원센터(16:30 10분 휴식) - 중산리 버스정류장(17:00)
4. 산행시간 : 9시간 15분
5. 산행지도
6. 산행 수첩
1) 차량 회수 방법
중산리 버스 벙류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
중산리 버스 정류장. 이 건물 맞은편 수퍼에서 버스표를 사야한다.
버스매표소 유리창에 붙어 있는 시간표
거림 두지바구식당 안에 붙어 있는 거림 버스 시간표
거림에서 중산리로 하산할 경우(중산리에서 시작하여 거림으로 하산을 하는 경우는 반대) 차량을 중산리에 주차하고 중산리에서 거림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15분 정도 소요, 요금 1,900원
중산리에서 거림으로 가는 버스는 07:30, 11:00, 13:50, 17:05, 18:50 이고, 거림에서 중산리로 나오는 버스는 07:40, 10:40, 13:40, 16:50, 18:40이다.
2) 산행팁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이 험하고 길기 때문에 하산시 무릎에 부담이 되는 경우에는 중산리에 주차를 하고 천왕봉을 먼저 오른 다음, 거림으로 하산하여 버스로 중산리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법계사에서 비교적 편안한 길을 이용하여 순두류로 하산한 다음 법계사에 중산리 매표소까지 운행하는 소형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버스로 순두류까지 올라 천왕봉을 오르는 방법도 있다.
중산리 매표소에 붙어 있는 법계사 버스 안내문
법계사 운행 버스 시간은 06:00 - 18:00까지 수시로 운행한다. 연락전화 010 - 6661 - 1450
7. 산행기
아내와 연하능선의 구절초를 보러가자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아들 녀석 진찰관계로 아내가 서울에 갔다가 토요일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피곤하여 집에서 쉬겠다고 발을 뺀다. 며칠 전부터 촌장형이 전화를 하여 셋이서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내가 빠지는 바람에 둘이만 지리산으로 향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차를 몰아 서부시장 전북은행 앞에서 촌장형을 픽업하니 정확히 5시다.
소양에서 익산 - 장수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짙은 안개를 헤치고 달려 장수분기점에서 대전 - 통영 고속도로에 올라선 다음 단성 IC에서 고속도로를 내려선다.(통행 요금 5,300원) 20번 도로를 이용하여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06시 50분이다. 진주로 나가는 영화여객 버스가 두 대나 대기하고 있다. 승객 대기실 건너편에 있는 매표소(수퍼를 겸하고 있음)에 물어보니 7시 30분 버스가 거림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중산리에서 거림으로 들어가는 버스.
거림 버스 정류장인 두지바구식당. 식당 마당이 버스 정류장이다.
승객 대피소에서 촌장형이 준비해온 찰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를 이용하여 거림으로 향한다. 15분도 못되어 거림 두지바구 식당 앞에 도착한다. 식당 마당이 버스 정류장이다. 식당안에서 중산리로 나가는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벽에 시간표가 붙어 있다고 한다. 시간표를 촬영하고 07시 45분에 출발한다.
두지바구 식당 옆으로 이어지는 좁을 길을 오르는데 세 대의 차가 올라간다 . 넓은 주차장에 세워 두지 않고 좁은 길로 차량을 타고 가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촌장형이 한 마디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후진으로 내려온다. 조금 올라가니 넓은 마당을 가진 식당이 있고, 몇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왼쪽으로 커다란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맑고 산뜻한 아침 기운이 가득하다. 앞에선 촌장형의 발걸음은 여전히 날렵하다. 허겁지겁 뒤를 따르는데 갑자기 촌장형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계곡으로 내려간다. 제법 그럴듯한 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명폭포. 촌장형이 어쩐 일인지 폭포를 구경시켜준다.
전망대에서 본 남부능선과 삼신봉. 왼쪽은 외삼신봉, 가운데는 삼신봉, 오른쪽은 내삼신봉
오늘따라 '문화 산행'을 하고 있는 촌장형.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산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촌장형이 오늘은 폭포에 눈길을 주고 있다. 참 별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천천히 가자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말 뿐, 커다란 돌이 울퉁불퉁 솟아 있는 길을 잘도 올라간다. 통사정을 하며 겨우겨우 뒤따라 간다. 촌장형은 역시 신사가 맡아야 한다. 산이 무너질 듯 불러대는 신사의 “개비성”이라는 소리가 그립다.
북해도교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붙어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들어선다. 한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삼신봉과 남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 형, 저기 남부능선 상에 한벗샘이라고 있는데 거기에서 하늘 보고 누워 하룻밤 누워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면 단풍이 물들 때 하룻밤을 보내볼까?”
형이 입만 벌리면 쏟아내는 것이 1박 산행이다. 내년 가을에 히말라야 원정을 앞두고 훈련 중인 형은 그 동안 준비해 놓은 장비들을 사용해 보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가 형의 갈증을 풀어 주지 못하고 있으니....
세석교에서 다시 작은 계류를 건넌다.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씻는다. 이제 세석은 코앞이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진행하니 남부능선 갈림길이다.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은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낙남정맥이기도 하다. 남부능선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하던 선배가 생각난다. 20여 년 전에 청학동에서 야영하고 남부능선을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부능선을 밟아본 것이 언제이던가. 이제는 아련한 기억의 끄트머리로 밀려나 버린 남부능선. 단풍을 뒤집어 쓰고 있을 무렵 바람처럼 슬며 들어서 보리라.
이미 가을의 노래가 시작되어 버린 세성 평전
세석평전은 이미 가을이 점령하고 있었다. 평원을 덮고 있는 가을의 이야기에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혼자서 올랐다면 이쯤에서 산행의 걸음을 중단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영신봉에서 내려다보는 잔돌 평원과 촛대봉에서 끌어 안아보는 평원이 아름다움을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넓고 넓은 평원에 쏟아져내리는 통랑한 햇볕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가.
시원하게 흘러나오는 샘물을 마시면서 생각하니 세석평원에는 참 물이 많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습지가 그렇고 은밀하게 숨어 있다는 청학연못이 그렇다. 또한 천 칠백 미터가 넘는 고원에서 계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세석평전만의 이야기가 아닐까.
촛대봉을 향하여 오르는 길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산오이풀이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이리저리 사진기를 들이대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같지 않다. 세석 평전의 잔돌을 적시고 있는 습지의 나무데크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앉아본다. 바람이 햇살을 보듬고 파고드는데 저 멀리에서 반야는 해탈의 웃음을 보낸다. 옛날의 선비들은 세속을 버리고 청아한 자연의 품에 안겨드는 지락(至樂)을 곧잘 노래하곤 했는데오늘의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냥 앉아 있을 뿐이다. 풍류(風流)가 무엇이겠냐만 마음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상념들은 어느 것 하나 풍류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산 아래 마을이 굽어다 보이고, 맑은 계류가 굽이를 돌아나가는 곳에 몸을 담고 있어서 풍류는 아니지 않은가. 무너질 듯 시끄러운 곳에서도 마음이 평온하면 그것이 곧 옛 사람들이 말하던 풍류가 아닐까.
흐르는 시간을 놓치고 있는데 한 무더기의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밀려 들어 문득 현실로 돌아온다. 촌장형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촛대봉 꼭대기를 감도는 바람은 희미하였지만 달콤하였다. 아직은 따가운 햇볕을 끌어안고 가을을 꼬드기고 있는 바람에 젖어 아무 생각도 없이 산 밖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신계곡을 벗어나는 곳에 앙증맞게 앉아 있는 산 밖 세상이 홍진(紅塵)으로 덮인 속세이고 이곳 지리의 품이 은둔의 지락(至樂)을 누릴 수 있는 만첩 청산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생각 같아서는 촛대봉 꼭대기에 돌비석이라도 되어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건만, 혼자만의 발걸음이 아니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선뜻 자리를 털고 쉽게 일어난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하선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하선경. 눈내리는 날 이 길을 걸어보면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연하선경의 구절초
이 꽃밭에 누워 눈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면 의식의 심층부에 가라앉아 있던 얼굴이 떠오를 것 같았다.
연하선경은 들꽃의 천지였다. 구절초, 쑥부쟁이, 산오이풀이 사이도 좋게 어깨동무하고 지리의 넉넉함을 노래하고 있다. 햇살은 꽃잎에서 말갛게 부서지고 파아란 하늘을 돌아내린 바람의 춤사위는 현란하지 않아서 좋았다.
더 이상 걸을 수는 없었다. 산길을 걸을 때마다 살아나는 느낌이지만, 도대체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인 것인가. 구절초의 꽃잎을 보듬어 가다가 촌장형을 놓아 버리고, 꽃잎 사이에 드러누워 버렸다. 꽃잎 사이로 떨어지는 파란 하늘에서 문득 자유가 뚝뚝 떨어진다. 산행을 하다가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 보는 참맛은 바로 이것이다. 무한의 자유가 넘실거리고, 세월을 놓아버린 채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드는 알싸한 맛은 어디에다 적어 놓을만한 값어치가 충분히 있으리라.
구절초의 꽃잎에 흐트러진 마음을 달래가며 숲속을 걸어 장터목으로 내려서는데 촌장형이 부른다. 초록빛이 줄줄 흐르는 나뭇그늘에 점심상을 펼쳐 놓고 있다. 소박한 점심을 마치고 일어서니 1시다.
제석봉 오름길
가을을 열고 있는 제석봉의 야생화들
장터목을 지나 제석봉을 오르는데 주변에 야생화가 널려 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눈은 하루종일 호사(豪奢)를 하였다. 1시 45분에 통천문을 지나고 2시 5분에 천왕봉에 도착했다. 뒤돌아보는 조망이 좋다. 지리산은 언제나 그 모습으로 서 있지만,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을 지나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고 싶다. 산 밖의 이야기를 담아 칠선계곡을 거슬러 올라온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천옹봉은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을 안고 있다.
천왕봉의 햇볕은 아직도 여름이었다.
천왕봉의 이정표
미치도록 가고 싶었던 중봉. 혼자였다면 그대로 중봉으로 걸었을 것이다.
중봉에서 치밭목으로 이어지는 써레봉 능선
천왕봉은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다.
중봉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은 오른쪽으로 써레봉 능선을 갈라놓고 하봉을 지나면서 많은 골짜기와 능선을 내려놓으며 왕등재를 지나 밤머리재로 달려간다.
천왕봉에 앉아 출입금지구역인 동부능선을 바라본다. 문득 중봉에 가고 싶었다. 써레봉 능선을 밟아 치밭목을 지나고 무재치기 폭포에서 지친 몸을 달래고 대원사로 내려서고 싶었다. 언젠가 그런 산행을 한 번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촌장형은 벌써 천왕샘으로 내려가고 있다.
법계사로 내려오다가 만나는 개선문
개선문에서 본 문창대
중산리로 내려가는 계곡
법계사 일주문
법계사 아래 헬기장에서 본 천왕봉
개선문을 지나 법계사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법계사에서는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실시한다고 한다. 아무리 무료급식이라고 해도 공양을 받으면 그냥 돌아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무슨 종을 건립한다고 안내문도 붙어 있고, 기와불사 접수 창구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식사 생각이 없어 시원함 물만 채우고 내려온다.
절을 탐방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무리 내려온다. 로타리 산장에서 순두류 아영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순두류에서 중산리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망바위를 지나면서 산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으로 들어서는 오르막에서는 힘이 넘치는데 내려서는 내리막에서는 언제나 힘들다.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촌장형은 막무가내다. 정신없이 뒤를 따라 장터목에서 유암폭포를 거쳐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다리를 건너 이내 칼바위를 지난다. 사람들이 휴식을 하면서 왜 칼바위인가 논쟁을 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 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한다. 그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다 이곳(지금의 칼바위가 위치한 곳)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했다는 전설을 말해주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망바위
망바위에 달아 놓은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망바위라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시를 써 놓은 모양이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부러진 칼날이 날아와 박혀서 되었다는 칼바위
중산리 매표소
이제 별 특징이 없는 길을 따라 20여분을 걸으니 시야가 터지면서 중산리 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선다.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땀을 씻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25분을 걸어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정류장 아래에 있는 계곡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날아갈 것 같다.
2009. 9. 6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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