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야산 (경남 합천 1433M)
* 일자 : 2006. 05. 05(금)
* 인원 : 아내와 나
* 코스 : 백운동 매표소 - 서성재 - 칠불봉 - 상왕봉 - 동성봉 - 동성재 - 백운동 매표소
* 시간 : 10시 - 16시 10분(6시간 10분)
1. 산, 봄날의 산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던
영국의 조지 말로리는
산으로 덮여오는
봄날의 이야기를 들어
무엇을 말했을까?
산에는
이렇게 봄이 가득히 내리는데
골짜기마다
봉우리마다
봄이
하늘 가득 솟아나는데.
그리움 하나만으로
산에 오른다는 것은
부치지 못할 한 통의 편지를 쓰는 것일까
서운거리는 마음을
붙잡아
기억의 저편에 꽁꽁 묶어버리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 말 없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산은
그렇게 서 있다.
봄을 가득 안았더도
텅 빈 마음으로
서 있다.
2. 가야산.
봄이 무르익는 5월의
산행은
돋아나는 생명의 이야기들과 동행하게 되어
삶의 한 면을 끌어안을 수 있어서 좋다.
백운동 매표소를 통과하여
몇 개의 다리를 건너는데
계곡 안쪽으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사이의 햇살.
적당한 오르막에
적당히 푸른 빛을 흘리고 있는 나뭇가지를 벗삼아
나무 계단을 오르고
커다란 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일어서는 모습에
탄성도 질러대며
한 시간 남짓 발품을 팔아
백운암 터에 선다.
통일신라시대 금당사에 속한 암자였다는
백운암 터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은근히 발길을 붙잡는 듯한 기운은
천 년 전의 이야기일까
산등성이 넘어
해인사에
고스란히 안겨 있는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부처의 마음일까
자비로움일까
서성재에 오르니
먼저 오른 산객들이 자리를 비켜주는데
아내는 발길을 돌려
가야산성을 밟아 오른다.
햇살도
돌 틈으로 스며들었는지
성벽에는
짙은 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운 작은 꽃잎 하나
목마른 눈망울을 하고
바라본다.
3. 바람이여, 세월이여!
바위를 타고 오르면
다시 사닥다리를 내어 놓으며
가야산은 조금씩
자신의 옷을 벗는다.
바위에 뿌리를 내려
천 년의 역사를 바라보았을
한 그루 소나무에
문득
한 떼의 바람이 몰려와 휘감긴다.
누가
자연 앞에서 세월을 이야기하랴!
바위 봉우리로 솟아난 가야산
칠불봉
우두봉
어디에서도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세월을 말해 무엇하며
탐욕에 젖어버린 인생을 어찌 내놓을 수 있겠는가
바람의 한 끝을 잡고
우두봉 바위에 기대어 점심을 먹는다.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수도산까지 달리고 싶다는 아내는
못내 아쉬운 눈길이지만
되돌아 칠불봉으로 내려서
벼르고 별렀던 동성재로 향한다.
4. 숨겨진 길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을
우회하는 길에는 휘휘한 느낌이 감돌기도 했지만,
그 호젓함이란
그 조용함이란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는데
비법정 등산로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죄책감을 달랠 길이 없었다.
하여
풀 한 포기라도 밟지 않으려고
마음을 날카롭게 다듬고
발길을 조심하여
걷는데
어두운 구름이 몰려다니고
바람이 불어닥치기도 하더니
느닷없이 집 채만한 바위가 가로막더니만
작은 암봉하나가 우뚝 나선다.
동성재 하늘바위다.
하늘 바위에 올라
세상을 향해 호령 한 번하고
암봉을 오른다.
암봉 정상에 올라
산 밖 세상을 굽어보니 보는데
신선이 따로 없어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본다.
아내는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암봉을 내려서는데
우리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는지 마애불이 슬며시
웃음 짓는다.
우리도
마음을 모아
돌부처를 향해 웃음을 건넨다.
5. 산, 산길
하산길은
비법정 등산로를 밟아온 탓에
긴장이 된다.
1인당 벌금이 50만원이다.
아내는 투정을 부렸으나
만약에
적발이 된다고 해도
100만 원짜리 산행의 가치를 마음껏 누린
호사로운 산행이었기에
편안한 마음이었다.
산에서
산길에서
만나는 시간들은
우리들의 삶의 부피를 늘려주었고
인생의 의미를 새겨 준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것일까?
급하게 떨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백운교 지나서
막아놓은 곳이다.
백운 매표소에서
되돌아본 가야산은
어느덧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한 가닥의 흐뭇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날 산행 이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비법정 등산로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가슴 조리는 산행은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산행의 의미를
다 씻어내버리기 때문이다.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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