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은 마라톤 전문 잡지 "런닝라이프"에 2003년 8월부터 2005년 5월까지 22개월 동안 연재한 내용입니다.
마라톤 기행 22
매화 향기 가득한 섬진강을 따라
Y형!
참으로 눅진눅진한 향(香)이 코끝을 감돌아 내립니다. 수줍어 살짝 고개를 내민 듯한 매화(梅花)송이에 걸터앉아 살랑거리고 있는 봄바람의 춤사위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봄은 그렇게 매화 꽃잎의 가장자리를 따라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느다란 노랫소리로 오는가봅니다. 푸르게 휘둘려 있는 하늘빛을 따라 온통 매화의 천지(天地)입니다. 산자락에도, 강둑에도,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오직 하나 폭넓은 매향(梅香)의 도도한 흐름이 있을 뿐입니다.
Y형!
섬진강을 따라 달리고 싶었습니다. 매화의 짙은 향을 따라 달리고 싶었습니다. 섬진강 양안(兩岸)을 따라 마음을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Y형!
화개장터에는 아직 햇살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침 기운만이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결을 따라 남녘의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디디고 있을 뿐입니다. 화개삼거리를 가로질러 섬진강을 건너가는 멋있는 자태의 남도대교를 건너는 기분은 마침 살포시 불어온 달콤한 바람과 함께 새뜻한 느낌입니다. 화개장터에서 매화마을까지 대략 1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달리는 시간 동안 내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화두(話頭)를 생각하며 신발끈을 붙들어 맵니다.
발밑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경쾌한 노래를 따라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객창감(客窓感)을 느낄 사이도 없이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를 가르며 달리는 느낌은 깊고 깊은 숲 속을 달리는 기분입니다. 늘상 그렇듯이 아침 달리기는 고요가 있어서 좋습니다. 더구나 도도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반주를 하는 까닭에 제법 운치까지 곁들인 달리기가 되었습니다.
Y형!
섬진강(蟾津江)은 남북한을 합쳐 아홉 번째로 긴 강으로, 전라북도를 동서로 가르는 호남정맥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에서 발원하여 전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남쪽으로 흘러 가면서 수없이 많은 지류(支流)들과 입을 맞추며 제법 통통한 몸집이 되었을 무렵, 경상도 사람들의 애환(哀歡)을 얹어 촉촉한 정(情)이 넘실거리는 물결을 이루어 남해바다와 몸을 섞어버립니다.
원래 섬진강은 가람 사수강·사천·두치강 등으로 불렀답니다. 그런데 고려 우왕 11
년(1385)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에 힘입어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자를 붙여 섬진강이 되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든 섬진강은 주변의 땅을 적시며 골짜기마다 세월을 쌓고, 논두렁 밭이랑을 따라 훈훈한 인정(人情)을 심고, 산자락을 따라 수없이 이어지는 마을의 고샅마다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을 남겨 놓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섬진강이 흘러가는지,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 사람들이 족적(足跡)을 남기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섬진강에 담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자, 섬진강 굽이에 감겨 사는 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 쌀밥 같은 토끼풀꽃, /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 그을린 이마 훤하게 / 꽃등도 달아 준다 /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고갯짓을 바라보며 /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 1>
Y형!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강물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마음을 다독거려 주는 시를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강가를 따라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들의 합창과 그 꽃잎위에 떨어져 내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허물어져 버린 흙담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토끼풀꽃, 손바닥만한 조각논의 바닥을 온통 분홍으로 덮어버리는 자운영의 다소곳한 모습을 가라앉은 잠재의식을 헤치며 끌어내 봅니다. 시인(詩人)들은 어디에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시구(詩句)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시구(詩句)를 타고 흐르는 끈끈한 정(情)의 실체를 찾아보기 위해 문득 강물 위로 눈길을 주었는데, 아! 그 순간 갑작스럽게 떠 오른 것은 강물 위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이었습니다. 강물은 어쩌면 장애물이었습니다. 강안(江岸)을 따라 양쪽으로 쪼개어져 버린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을 그 진하디 진한 그리움 말입니다.
Y형!
강변에는 참으로 고운 자태로 매화(梅花)가 피었습니다. 그야말로 매화 천지였습니다. 지천(至賤)으로 피어 있는 매화는 이제 더 이상 지조(志操)를 말할 수 없을 정도 흔하디 흔하게 피어 있습니다. 설중매(雪中梅)의 고귀하고도 도도한 절개는 섬진강을 따라 은은한 매향(梅香)을 흩뿌리고 있는 매화 송이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수필가 김진섭님이 <매화찬>에서 ‘조춘 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한(嚴寒)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꽃이라며, ‘사군자의 필두(筆頭)’라고 칭송하던 ‘초고(超高)하고 견개(狷介)’한 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 달 아래 처연(悽然)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親和)한 동감(同感)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이 태탕(駘蕩)한 계절에 난만(爛漫)히 피는 농염한 백화(百花)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超高)하고 견개(狷介)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 김진섭, <매화찬(梅花讚)>에서
그러나, 매화는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쯤은 넉넉하게 품어 버릴 만큼 두툼하고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섬진강의 허리를 하이얀 꽃잎으로 휘둘러 눈시리게 파아란 하늘을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길가에까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너울거리고 있는 매화에 부딪혀 달리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봄날의 노랫소리에 젖어 청매실농원인지 매화마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매화 천국까지 한달음에 달려버리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만 매화의 향기에 도취되어 버린 까닭입니다. 아내는 진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덕지덕지 바른 진한 화장품의 냄새보다는 느껴질 듯 말 듯 느껴지는 가느다란 비누향이 눈길을 잡아당기지 않습니까?
Y형!
매화마을은 그 입구에서부터 쉽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풋풋한 매화의 속살을 들여다보겠다고 한꺼번에 몰려온 차량들을 길가에 세워 두고 시샘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걷고 있습니다. 우리야 어차피 달려서 온 터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매화의 속살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곳은 광양 매화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한가운데였습니다. 넓은 공터에는 빽빽하게 모여든 사람들이 이마를 마주하고 선술집의 앉은뱅이 의자에 다양한 모양으로 몸을 내려놓고 묵은 정(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질서가 아니었습니다. 혼잡스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련(一連)의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하게 꽃구경의 뒷이야기나 늘어놓는 허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눅진눅진한 삶이 묻어나는 맛나는 이야기 말입니다.
청매실농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 앞에서 우리는 달리기를 멈추었습니다. 겨우 1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달려온 터라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오른쪽 산자락을 희고 흰 손길로 애무(愛撫)해대는 풍광(風光)을 조금은 즐겨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달리는 즐거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보는 즐거움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매실농원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올라보니 매화의 천지(天地)였습니다. 매화 그늘 아래 앉아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평화의 산실(産室)이었습니다. 굽이굽이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얼굴을 내밀고 있는 매화는 세상을 바꾸어 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아니 세상에는 매화밖에는 어떠한 꽃도 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입니다. 언제까지나 매화에만 빠져 있을 수가 없어서 되돌아 서는데 매화농장 앞마당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항아리 위에 내려 앉는 햇살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Y형!
매화에 팔려 잠시 눈길을 거둔 사이에 섬진강은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디에나 내놓고 자랑할 만한 너비로 자라버린 강은 그 흐름이 얌전해졌습니다. 고요한 수면위에 내려 앉는 햇살은 누군가 은빛 조각들을 마구 뿌려 놓은 듯이 봄날의 부드러운 햇볕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정에 달했다는 외침입니다. 이제 바다와 그 진한 몸섞음을 하고 황홀한 오르가즘을 토해내고 나면 섬진강은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진강은 절대로 끝을 보이지 앉습니다. 또 다른 물줄기들이 모여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뚝딱뚝딱 하나의 섬진강을 다시 만들어 내는 까닭입니다. 강변에서 살면서 섬진강과 희노애락을 같이 맛보았던 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끊어지지 않습니다. 강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섬진강에서 생겨나는 것인 까닭입니다.
다리를 건너 하동군으로 들어서 19번 국도를 따라 섬진강을 거슬러 달립니다. 차량이 많아 달리는 걸음이 퍽이나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산하(山河)가 뿜어대는 봄기운과 교태로운 몸짓에 자꾸 한눈이 팔려 즐거운 마음은 자꾸만 실팍해져 갈 따름입니다.
“보나마나 재첩국이제. 하동하믄 바로 재첩국인기라. 그래 뜀박질만 하지 말고 저그 저집에 드가서 재첩국 한 그릇 묵고 가라카이.”
엉성한 나뭇그늘에 앉아 볕가림을 하고 있던 김영환 할아버지(78세)는 재첩국 자랑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섬진강 재첩국이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명성이 높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달리는 것도 저버리고 간판이라고 손바닥만해서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허름하고 볼품없는 집이 맛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오소. 이리 앉으이소. 재첩국 한 그릇 드릴까예?”
조금은 투박한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렇게 정을 나눌 수 있는 까닭에 여행은 살아 있습니다. 섬진강이 살아 있어서인지, 재첩이 살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투박한 시골 아낙의 정이 살아 있어서인지 봄햇살을 밟아가는 달리기에 지쳐 있던 우리도 덩달아 살아났습니다.
재첩은 섬진강이 광양만 바닷물과 몸을 섞는 섬진강하류의 넉넉한 품에서 어른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자라는 민물조개입니다. 비교적 염분이 적은 모래 토양에서만 서식하는데 비타민, 칼슘, 철분 등 여러 가지 영양분을 듬뿍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한 잔 진하게 마신 사람들이 숙취를 풀기 위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바로 재첩국이라고 합니다.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허리를 굽히고 재첩을 잡는 아낙들의 모습이 지리산 그림자와 어우러지는 풍광은 차라리 한 폭의 그림자입니다. 잡는 모습이 아름다워 재첩국의 인기가 높은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Y형!
재첩국의 시원한 국물맛을 혀끝에 담아 간직한 채로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악양 들녘으로 향합니다. <토지>는 1969년부터 박경리님이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집필한 대하소설로,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 한국 농촌을 비롯하여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외적인 공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3만 매가 넘는 원고지에 한국인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운명적 삶의 애환과 의지를 민족적 삶으로 확대 조명하고 있는 역작(力作)입니다. 그런데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세인(世人)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평사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으니 참으로 방송의 위력은 서적에 배인 잉크 냄새하고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산자락의 낮은 언덕에 자리 잡은 평사리 상평마을에 위치한 최참판댁에서 내려다보는 악양 들판은 이제 막 피어오르는 봄기운으로 가득합니다. 평사리를 무대로 무려 25년 동안에 걸쳐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은 정작 평사리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악양 들판의 넉넉함을 보고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최참판댁도 사실은 상신마을에 있는 조부잣집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설은 작가의 가슴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Y형!
화개장터 삼거리에 섰습니다. 쌍계사쪽으로 꼬리를 이어가는 벚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터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마라톤기행을 처음 시작하던 때를 생각해봅니다. <성기>와 <계연>의 아픈 사랑이야기를 더듬어 쌍계사 골짝을 거슬러 오르던 기분을 다시 느껴봅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의 향을 맡으며, 나직한 노랫소리로 세월을 이야기하는 시냇물을 따라 아름다운 우리 산하(山河)를 달리며 만났던, 포근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情)은 그대로 제 의식의 심층부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주었습니다.
Y형!
형은 언제나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서 마라톤을 거두어낸다고 해도 말입니다. 처음으로 형과 같이 주로(走路)에 서던 날을 기억합니다. ‘달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이다. 달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달리는 행위 그 자체가 네 마음 속에 던져 주는 실팍한 외침을 들어야 한다’는 형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나란히 중인리 들판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일부분을 달리기로 채우게 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달리기의 의미를 찾기 위해 깊이 가라앉았던 잠재의식까지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그때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바로 마라톤 기행이었습니다.
Y형!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클럽 어느 분이 말한 것처럼 달리기는 ‘소주(笑走)와 안주(安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라톤 기행을 하면서 즐거운 달리기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름도 없는 우리의 산하(山河)를 찾아 달릴 것입니다.
2005년 3월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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