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동유럽 여행기

10. 체코 2 - 프라하( Prague) 화약탑, 구시청사 천문시계, 틴 성당

힘날세상 2018. 8. 14. 10:41

10. 체코 2 - 프라하( Prague) 화약탑, 구시청사 천문시계, 틴 성당

2018. 07. 25 수요일



제목의 프라하 앞에

무엇인가 수식어를 붙여보려다가

그냥 프라하라고 붙였다.

차라리 아무 수식어도 없는 것이

프라하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프라하 성에서의 조망과 카를교에서의 조망



남북으로 흐르는 블타바강을 따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립박물관까지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한 도시.

Pilsner Urquell

Budweiser

Kozel

최고의 맥주가 기다리는 도시.

과학자 케플러와 아인슈타인,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

문학가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을 낳은 도시.

프라하의 봄

바츨라프 광장을 자랑하는 도시. 프라하.




프라하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를 맞아 준 것은

배고픔이었다.

아무리 프라하가 아름답다고 해도

점심부터 먹자고

가이드는

쏟아지는 햇볕을 안고

식당으로 인도한다.

가는 길에

프라하에 단 두 개 남아있다는 화약탑을 보여주면서

나중에 실컷 볼 것이라며

사진도 찍지말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경계가 되는 화약탑.

또 하나는 카를교에 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프라히 시내를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라고 들었지만

우리는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기에 바빴다.

나중에 카를교에 있는 화약탐 전망대로 올라갔는데 중간쯤에서

입장료 100코르나를 받았다.

체코 돈이 없어서 중간에서 바라본 틀타바강과 카를교, 프라하 성에 만족하고 되돌아 내려왔다.


  화약탑은 1475년 블라디슬라프 2세가 초석을 놓고 카를교탑을 모델로 만들었는데, 원래는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의 성문 중 하나였기 때문에 프라하 시내에는 이와 비슷한 건물들이 많다. 화약탑은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 회관과 나란히 서 있으며, 체코 왕들의 대관식 행렬이 지나가던 ‘왕의 길’인 첼레트나 거리의 시작점이다. 17세기 초 연금술사들의 연구실 겸 화약 창고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화약탑’이란 이름을 얻었다. 18세기 중반 프러시아 전쟁 때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1876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출처 <DAUM 백과>








가이드는

이런 식당을 에약한 여행사가 대단하다며 치켜 세운다.

단체 관광객보다는

프라하 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최고의 식당이라는 것이다.


REPRE RESTAURANT!

정말 작은 식당 간판에 놀랐고

식당의 규모에 놀랐고

현지인들이 정말 많았던 것에 놀랐고

음식 맛에 놀랐다.


일단 숩이 먼저 나왔는데

그 담백함이 최고였고


잘익은 립이 아주 맛있었다.

그동안 식사할 때마다

음식이 짜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음식은 짜지 않고 아주아주 맛있었다.




바츨라프 광장


구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광장 중 하나인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750m, 너비 약 60m에 달하는 긴 대로이다. 국립 박물관 앞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으며 이에 바츨라프 광장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기마상 앞쪽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좌절되고 1969년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8년 체코인들의 자유 · 인권 · 민주를 향한 외침인 ‘프라하의 봄’이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의 탱크에 무참히 짓밟혔다. 체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이런 열망들이 바탕이 되어 1989년 11월 극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하벨(Václav Havel)은 반체제 연합인 ‘시민 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 혁명을 이룩하였다. 시민 혁명이 성공한 뒤, 체코의 대통령이 된 하벨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 혁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벨벳 혁명’이란 말이 비롯되었다.

현재 바츨라프 광장의 양 대로엔 호텔과 레스토랑, 서점, 여행사, 쇼핑센터들이 늘어서 있다.   출처 <daum 백과>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을 낳았던 바츨라프 광장은

마침 공사중이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광장 끝에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고

첨탑이 보이는 건물은

국립박물관이다.



이제 슬슬 걸음을 옮겨

시청사 천문시계와, 틴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 광장으로 간다.







이것이 프라하의 명물 아이스크림이다.

빵을 구워 그 안에 아이스크립을 담아주는 것으로

나중에 카를교 주변에서 사먹었는데

5유로 정도 주었던 것같다.



구시청사 천문시계는

마침 공사중이었다.

이 건물 뒤가 얀 후스 동상이 서 있는 구시가지 광장이다.



구 시청사 천문 시계


  구 시청사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천문 시계 앞에는, 매 시 정각(9:00~21:00)에 시계가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인이 모여든다.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 시계를 뒤집는 것과 동시에,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 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나는데, 이 과정을 다 합쳐도 채 1분이 안 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 것을 걱정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시계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고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출처 <DAUM백과>



첨탑이 눈길을 끄는 틴성당.



틴 성당


1365년에 건립되기 시작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인 고딕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는 다르게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다. 프라하 성의 성 비트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고 있는 이 성당은 15세기~16세기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높이 80m의 두 개의 첨탑은 아담과 이브의 탑으로 외형상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가 조금 다르다. 두 첨탑 사이엔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과 후스파를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배가 있었으나 30년 전쟁 후 가톨릭이 정권을 잡으면서 왕의 조각상을 녹여 성모 마리아의 초상으로, 성배는 후광으로 제작했다. 성당 내부에는 루돌프 2세 아래서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브라헤(TychoBrahé)가 잠들어 있다.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완전 개방은 하지 않으며, 미사 시간 전후로만 개방하고 있다.         출처 <DAUM백과>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얀후스 동상



얀후스 동상


구시가지 광장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얀 후스 동상은 1915년 얀 후스의 사망 50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비이다. 15세기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는 가톨릭의 타락을 앞장서서 알리다 로마에서 화형당하고 그 뒤로 그의 추종자들 역시 처형되었다. 얀 후스 동상은 세계인들에게 프라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잠시 앉아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벤치가 동상을 두르고 있어 하나의 보호막처럼 느껴진다.

                                                                                                                                               출처 <DAUM 백과>




프라하 올드카 투어


구시가지 광장에서 약간의 자유시간을 즐긴 후

옵션으로 선택한

올드카 투어를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38명인네

모두다 이 옵션을 선택하여

올드카 8대가 대기하고 있다.

1대에 5명씩 타고

구시가지를 돌아 프라하성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올드카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건물들을 감상한다.

이 옵션은 꼭 선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올드카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존레논의 통곡의 벽


1980년 존 레논이 사망하고

사람들은 이곳에 그의 노래가사와 그림을 그리며

가버린 그를 추모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터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반정부 구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 이곳은 몰타 대사관의 담벽으로

치외법권이 인정되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도 벽에 그려진 낙서들을 지우지 못했고, 

몰타정부 역시 이를 지우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곳은 공산정권에 맞섰던

체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표명된 성스러운 곳인데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채색된 모습에만 감탄하며

사진찍기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