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베트남 여행기

제 3 일 판티엣 - 무이네(2018.12.24)

힘날세상 2018. 1. 17. 18:59

제 3 일 판티엣 - 무이네(2018.12.24)



오전 일정은 자유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뒹글뒹글 놀면서

사진 감상도 하고

리조트 뒤에 있는 바닷가를 걸어보기도 하다가

11시가 되어 리조트 정문으로 갔다.



























팩키지 여행은

편리하다는 잇점이 있지만

자유롭지가 못하다.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오늘 오전은 자유 일정이다.

리조트가 시내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리조트 내에서 놀아야 하지만

오전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리조트에서 나오니

햇살이 참 좋다.

바람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공기도

참 맑고 맑았다.

무이네의 아름다운 해변을 왼쪽으로 끼고

포사이누 참탑으로 이동했다.


9세기 경 참파 왕국의 유적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하고

무너지고 남은 흙탑이

붉은 빛의 추레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와인캣슬

그야말로 와인을 만들어 보관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완인도 한 잔 마시고

조용이 숙성되며

몸값을 높이고 있는 와인통을 들여다보고

만져보면서

시원하면서도 어둑어둑한

시간을 보내며

달콤함을 입으로 녹여본다.


무이네 여행은 여유로움이다.

아니면

느긋함이라고 할까.

오토바이나 한 대 몰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곳에 앉아

동그마니 시간을 보내거나

차량을 한 대 운전하며

차창을 반쯤 열고

밀려드는 바닷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름다운 무이네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햇살이 마음이 들고

한적한 여행지가 있을까.

남해의 다랭이 마을을 돌아가는 길도 떠올려 보고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를 그려보기도 하고

동해안 축산항을 돌아가는

굽이굽이 좁은 길을 다 돌아다보지만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이다.

여행의 중심은 낯설음이다.

낯설음이 주는 감정은

설렘이다.

그 설렘이 있기만 하다면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여행지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곳은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혼자 걸어보라.

진안 고원길을 홀로 걸어보라.

고요하고

낯설며

설렘은 있다.

어느 곳을 여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여행의 비옥함을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용이네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곳에서

파인애플 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그저 그런 볶음밥이다.






점심을 먹고

무이네 짚차 투어를 한다.

짚차는

딱 굴러가는데 필요한 것만 붙어 있다.

운전대와 바퀴만으로 되어 있는 짚차

신통하게도

포장도로를 힘차게 달리기도 하고

해변가 모래사장도

거뜬하게 주파한다.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듯하지만

이 녀석은

우리를 무이네의 최고 경관인

화이트 샌듄으로

레드 샌듄으로 데려다 주었다.







무이네 피싱빌리지에서

짚차를 세우고

속칭 바구니배 군락을 내려다 본다.

작은 바구니 배를 타고

삶의 질곡을 넘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물은 어떠했을까.








짚차는

시내를 달리기도 하고

바닷가를 돌기도 하다가

우리를 화이트샌듄으로 데려다 주었다.

다낭을 가지 않고

무이네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곳 화이트샌듄과 레드샌듄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찦차는 단번에 사막을 달려

그럴듯한 봉우리에

우릴 내려 놓는다.

사막.

첫경험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고비사막을

언젠가 만날 터이지만

오늘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도 보고

모랫바닥에

엎드려도 보고

그냥 사막에 젖어 버렸다.












선택관광으로

4륜 바이크를 탈 것을 은근 종용했으나

나는 사막을 걷고 싶었다.

발바닥으로

사막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온몸으로 사막의 진수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4륜바이크라니!

안돼,

안될 말이다.


모두가 4륜 바이크를 타고

사막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나는

바람이 만들어 놓은

모래 언덕을 애무하며

발목을 더듬어 오는

화이트샌듄 바람의 까칠한 혀놀림을 받으며

우리는 운우의 정을 나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4륜 바이크를 포기한

원주에서 오신 모녀분들과

우리는

몸이 가라앉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 들어

일행이 모두 다 내려가고

우리만

텅 빈 사막에 남겨졌을 때까지

화이트샌듄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가지말라는

화이트샌듄의 애절함을

뿌리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만날 때는 쉬웠지만

헤어질 때는 어렵다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우리는

그렇게

화이트 샌듄에게 등을 돌렸다.


사실

여기는 사막이 아니다.

좀 넓은 모래밭이다.

바닷가의 모래가

해풍에 날려 쌓인 곳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충분히 사막이었다.

사막의 모래 폭풍이 불었고,

그만큼 내 발목은 따가웠고

눈시리게 푸르른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화이트 샌듄은

아름다운 사막이었다.

아름다운 사막이었다.





















화이트 샌듄의

아쉬움에 허탈해하기도 전에

우리의

마음을 토닥여 준 것은

레드샌듄이었다.


붉은 모래 언덕.

맨발로 걸어 다니며

모래썰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사막을 즐긴다.

화이트 샌듄에 비하면

내가 사막을 즐기는 방법이다.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조잡한 썰매,

썰매라기보다는

플리스틱 조각을 타며

동심을 불러 일으며보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냥

모래 언덕에 앉아

늦은 오후를 거슬러 오는

모랫바람이나 맞으면서

마음을 내려 놓고

복잡한 시간도 내려 놓고

무념무상으로 앉아 있는 것이

내가 사막을 즐기는 방법이다.


청마 유치환의

<생명의 서>라는 싯구를 슬며시 품어 본다.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여류시인

이영도를 혼신을 다해 사랑했던

청마는

왜 사막을 마음에 품었을까.


5,000 여 통의 편지를 보내며

이영도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했던 청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청마는

이루어낼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청마는

가슴이 아팠을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청마 유치환 ( 그리움 2) -


통영 앞바다에 앉아

피를 토하는 절규를 부르짖기도하고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52년 6월 2일 당신의 마(馬) -


무서울 정도로 애절한 마음을 담아

이영도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청마.


그래서였을까.

청마는 자신을 저 혹독한 아라비아 사막으로 던져 넣고 싶었을까.

그리하여

원시의 생명력을 일으켜

아픈 마음을 쓰다듬고 싶었을까.


20년을 이어온

유부남과 딸 하나를 둔 과부의 안타까운 사랑은

청마의 교통사고로

허공을 맴돌게 되는데

청마의 사랑은

훗날 이영도가 묶어 놓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에 고스란이 남아 있다.



이국의 땅

무이네의 모래 언덕에서

느닷없이

청마의 사랑이 떠올랐을까.

나는

청마의 <생명의 서>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때그떼 내 느낌에 따라

내 마음대로 받아들인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애절함으로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새학기를 시작하는 옹골찬 다짐으로

나는 창마를 바라본다.














레드캐넌에서

팩키지 여행의 절망감을 또 한 번 맛본다.

이번 여행을 선택할 때

레드 캐넌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도 묵직한 이유였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황톳빛 물길을 걸어 오를 때만 해도

레드 캐넌의 끝에 있다는

요정의 샘을

그리고 있었다.

석회암 바위가 그럴 듯하게 서있는 곳에서

걸음을 돌려 놓는

오늘의 가이드.

그는 가이드가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인상이야

그렇다고 해도

진짜 우리가 즐기고 느껴야 할 부분은

가려버리고

중간에서 발걸음을 돌려 세우는 심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골짜기를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바위 뒤를 돌아갔는데

절경은 그곳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더 가려는 우리의 걸음을 되돌려 세우려는 가이드와

입씨름하면서 더 들여다본 레드캐넌은

아름다웠다.


종업원 한 사람이 기업을 망칠 수 있다고 한다.

참좋은 여행사를 통해

유럽을 돌아다녔던 좋은 느낌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돌아와

1인당 60 달러를 추가로 지불하고

소위 씨푸드를 먹었는데

아무리

가이드가 이런 돈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여행사가 이런 돈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60달러 짜리 이 알량한 식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불고기 백반을 주었는데

그들이 부러웠다.

여행 왔으니

한 번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이 있었지만

1인 3만원 정도면 적당할 듯하다.


그해 여름

이곳을 혼자 여행했던 아들은

18,000원에 먹었다고 하니

참으로 속터질 일이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다.

리조트 수영장에서

밤바다를 바라보며

불편했던 마음을 닦아내고

하루를 닫는다.


2016. 12. 24.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