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순천 낙안읍성에 내려앉는 햇살

힘날세상 2018. 1. 16. 13:45

순천 낙안읍성에 내려앉는 햇살

                                                                 2018. 01. 15



햇살은,

강추위 끝을 따라 들어선 햇살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한 아늑함을 담고 있었다.

낙안읍성

관아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햇살은

어디에 꼭 담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지나다 들른 찻집

마루에 앉아

받아든 찻상을 놓고

시간을 묶어 놓는다.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한다.







늦은 오후

낙안읍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금전산에게

눈인사 한 번 나누고

성 안으로

 햇살을 따라 들어선다.






낙안읍성의 정문 역할을 맡고 있는 동문

문루가 화려하지도 않고

성벽이 높지도 않으나

그래도 저것이

밀려들어오는 적군을 막아내었을 것이고

성 안의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을 터,

성 앞에서 서면 언제나

성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성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의

힘겨룸이 떠오른다.

큰 칼을 휘두르며 호령하던 장수보다는

창 하나 들고

성벽을 지키던 군졸이 먼저 생각나고

그들의 마음이 애절하고

그렇다





성 안에는

햇살이 가득하고

그만큼 추위도 가라앉았고

그래서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도 넉넉해진다.





왜 바람이 났을까


4월에 피는 꽃의 여왕이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잎이 나오기도 전에 피었다가

잎이 나올 무렵에는 열매를 맺어 놓아

봄을 알린다는데

그래서 바람이 난 여인이라고

방(榜)을 붙여 놓은 사람의 심술이란.








동헌 앞을 지키고 있는

청사초롱 찻집

마루에 내려 앉는 햇살에 끌려

대추차 한 잔을 받아 놓고

주인 아낙과 수다를 놓는다.


성 안에 있는 집들은 모두

개인 소유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집들이 민박을 놓아

손자들 과자값이라도 만져보고


내년이면 퇴직하는 남편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와

찻집을 열고

찾아주는 사람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앓고 있던 비염이란 놈이

못살겠다고 달아나버리고

이젠 푸른 하늘이나 바라보며

늙어가는 시간이나 다독이고 있다고 한다.




자기도 용돈이나 벌어보려고

 방 두 칸을 열어

사람들을 들이고 있는데

작은 방 하나는 2인에 5만원이고

큰 방은 6인에 8만원을 받는데

주말이라고 더 받거나

사람들이 밀려온다고 더 받지 않는다며

화사한 웃음을 웃는다.

마을의 민박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는데

취사시설은 갖춰놓지 않았지만

마당에 있는 탁자에서

끓여먹고

볶아먹고

구워먹는 것 다 환영한다며

지나는 길 있으면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한다.







동헌 앞 너른 뜰을 건너다가

우뚝 몸을 일으켜 세운

낙민루와 마주선다.

그래도 이 녀석이 나이 좀 먹었다고

제 몸집보다 몇 십 배나 큰 나무들을 거느리고

푸른 하늘까지 등에 업고

몸매 자랑을 엄청나게 늘어 놓고 있는데

지나가는 바람 한 자락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세월 앞에서 다 부질 없는 짓이라며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동헌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서 대성일갈(大聲一喝)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사또가 큰 소리로 문초를 하고 있다.

"사또 억울하옵니다."

"저 놈의 입에서 바른 소리가 나올 때까지 매우 쳐라"


사또가 죄가 있다고 하면 죄가 있는 것이었으니

힘없는 민초들은

얼마나 아픈 삶을 살았을까.


"엄마, 이 아저씨는 왜 여기에 무릎 꿇고 있어?"

"죄를 지어서 끌려온거야."

"무슨 죄를 지었는데?"

"............."

무슨 죄를 지었을까.


이러다가

'탁'치니 '억'하고 죽지 않을까.










동헌 마루에는 앉지도 못하고

옆에 있는

내아(內衙)로 간다.

성읍을 다스리는 사또를 보좌하는

아낙들의 살림 공간

마루에 찾아든 햇살에 온통 마음을 뺐겨

내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

60 평생을 살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을 받아봤지만

오늘 햇볕은

꼭 어디에 적어두고 싶다.

스며든 햇살같이

고을 원님의 사랑이 민초들에게 내렸을까.

장독대에 내려 앉은 햇살은

장맛을 얼마나 살려냈을까.








동헌 앞 뜰에

누군가 세워놓은 장승은

큰 잎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고을 사또의 선정(善政)을 고하고 있을까

폭정(暴政)을 발설하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는 한 번 잘못으로

자신이 죽고나서도

대대손손 욕을 먹지 않는가.

세조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정치를 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 입에 세조는

왕위를 찬탈한 임금으로 먼저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훗날 국민들로부터

대대손손 욕을 먹는다면

대통령 안한 것만 못하지 않을까.





마을 고샅으로 느릿한 걸음을 걷는다.

낙안읍성을 여러 번 와봤지만

고샅으로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에는

이 길만한 곳이 어디에 있으랴.

성주가 마셨다는 우물가에서

훌륭한 지도자는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국민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22조를 들였다는

4대강 사업

그는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남문의 누각은

쌍청루이다.

조금 외진 곳에 들어 앉아

발길이 뜸한 곳

그러나 이곳 남문가에도

사람사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앙증맞은 도자기들을 늘어 놓은

주인의 솜씨를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기도 하고

과거 급제자를 여러 명 배출했다는

작은 집 마당에 들어가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자신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살기를 빌어보기도 했다.






다시 고샅을 걸어

동문으로 왔다.

동문은 낙풍루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오랜 세월을 이어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지켜온 낙안읍성

이곳에는

역사가 있고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고

젊은이들의 꿈이 자라고 있고

마을 사람들의 수더분한 이야기가

수북수북 쌓여 있다.






2018.01.15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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