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제주 여행기(2016.01.23-26)

힘날세상 2016. 2. 11. 05:45

제주 여행기(2016.01.23-26)


1

 

삶은

내가 스스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마주쳐야 하는 미래도

힘을 실을 수가 있다.

70만원을 지갑에서 덜어낸 댓가로

한 주일의 삶을 제주에서 잇는다.

그냥 

육지에서 맛난 것 사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으로

제주의 한 주일에서 추출할 

삶의 모양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여행은 살아 있는 까닭에

떠나지 않으면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없다.

 

여행이라는 것은

일정을 세밀하게 세우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은 

한라산 산행의 여운을 살려

발길 닿는 대로 이러저리 걸어다니는

그야말로 무작정, 무일정이다.

 

캔싱턴 리조트의 아침은

흐릿한 하늘로 열렸다. 

간간히 눈발이 내리는 바닷가를 

올레 7코스라고 이름지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행복하다.

포근하고 아늑하다.

걸음은 자꾸 멈춰지고

눈은 이리저리 호사를 한다.

어느 바닷가

해녀들이 차려내는 점심과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커피숍의 진한 향을 느끼다가

쏟아져 내리는 눈 폭탄을 맞으며

나는 환호했다.

그 눈발이 가져올 엄청난 재앙을 알지 못한 체

바닷가의 바람을 좋아했고

앞을 가릴 정도로 쏟아지는 눈발을 끌어 안았고

황홀,

그렇다 황홀하다는 느낌이었다.


 

2

 

간 밤에 눈이 많이 내렸다.

서귀포 사람들은

32년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바람은 거세게 창문을 할퀴어댔고

눈을 즐기러 밖으로 나갔지만

눈보라에 맞설 수가 없어

숙소로 되돌아와야 했다.

연탄불에 구워주는 흑돼지고기는

값만 비쌌는데

그것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퍼붓는

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창문 너머로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기도 하는

한라산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공항이 마비되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갇혔다.

대형 항공사 탑승권을 쥔 사람들과

저가항공사 탑승권을 쥔 사람들은

공항 대합실 바닥에서

뒹글며    

그 차이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내일도 공항이 정상화될 것 같지 않았다고 판단한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하였고,

어떻게든 육지로 나가는 길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밤은 찾아들었고

눈은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3

 

탈출을 해야 했다.

최소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어찌됐든

제주시로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제주 공항으로 갔다.

거기는 국제 공항이 아니라

피난민 수용소였다.

무상으로 배부해 주고 있는

초코파이, 물 등을 받기 위해  

공중도덕도 버렸고,

자존감도 내다 벼렸다.

한 병의 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랐다.

제주 군산 간

저가항공 탑승권을 손에 쥔 입장에서는

막연하게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제주 여객터미널로 갔다.

어렵게 다가간 창구에서는

내일 표도 팔지 않는다.

모두 매진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승선권 판매 회사와 거래선을 대고 있던

사람과 어렵게 연결이 되어

1월 26일 화요일 오후 3시 완도행 승선권 6장을 손에 넣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문시장에서

흑돼지 삼겹살 구이를 먹으며

쓰린 속을 달랬다.

제주에서 평생을 사셨다는 그분은

다른 곳 흑돼지는 믿을 수가 없다며 분개했고

우리는 그분의 너스레에 맞장구치며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소주와 함께 털어 넣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에게 고기를 사주신 그분께 감사드리며

 어둠을 달려

서귀포로 되돌아 왔다.

 

 

4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리조트 앞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갔지만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조급한 마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상황에 빗대어 훌륭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급함은 불안감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서귀포 택시를 콜했다.

버스비의 두 배를 내고

여객터미널에 12시에 도착했다.

놀라운 것은

어제는 없다던 승선권을 팔고 있지 않은가.

오후 3시에 추자도 경유 완도행 배는

370명 정원인데

겨우 100여명만 태운 채 출항했다.

공항에는 수만 명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완도까지 차를 빌려 마중나온 분의 배려로

밤 12시를 넘기지 않고

우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

 

참 독특한 여행이었다.

하늘이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절대 설계할 수 없는

제주 여행이었다.

 

눈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고,

약간의 즐거움보다는

조급하고 불안감이 넘쳐나는

제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슴으로

항구를 벗어나는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1월 22일 오후 캔싱턴 리조트에서 본 한라산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주는 평안했다.






리조트는 불을 밝히고 어둠과 맞서고 있다.








아침이 되었고

올레길 7코스를 걸었다.

제주는 즐겁고 흥미에 찬 여행지였다.

자연은 아름다웠고

바다는 순한 양이었으며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해맑은 얼굴이었다.

 


 









 

오후 들어 내리기 시작한 눈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매서운 바람과 합체한 눈발은

눈보라의 칼날을 들이대며 우리를 할퀴어댔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았다.


 




 


 

법환포구던가

최영장군이 활약했다는 마을에서

해녀들이 끓여내는 성게죽은 안먹고 싶었다.

 





 

 

한라산으로 내린 빗방울이 모여

땅밑을 흘러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법환마을에서 샘터를 만들고

공동 노천탕을 이루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뷰크레스트라는 커피숍에 앉아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우린 낭만을 이야기했고

영화 러브스토리를 말하기도 하면서

히히덕거렸다.

커피향에 대해 논하면서

아름다운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서귀포의 대명사라는

어느 횟집에서

비싼 저녁을 먹고

눈에 짓눌려가는 서귀포를 빠져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리조트는

이미 내린 어둠에 싸인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을 새어 눈보라를 몰아와

우리의 창문을 쥐어 뜯고 할퀴어 대었다.

 






점심을 먹으로 가는 길





전지훈련을 왔다는 고등학교 육상 선수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

 눈이 와서 혹독한 훈련을 안하고 쉴 수 있다며 좋아하던

학생들의 눈매가 선하다.

 


 

캔싱런 리조트 앞의 흑돼지 구이(위)와 제주시 서문시장의 흑돼지 구이(아래)비교해 보라.위는 13만원을 지불하였고, 아래는 7만원을 지불하였은데 위는 부족하였고, 아래는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난민숙소같은 공항에 비해

한산해도 너무 한산한 여객터미널

 


승선인원 376명의 한일 익스프레스호








추자도항의 모습과 일몰

 

 

2016년 1월 26일 힘날세상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 낙안읍성에 내려앉는 햇살  (0) 2018.01.16
여수 향일암에서 만난 일탈  (0) 2018.01.16
거제 외도 보타니아  (0) 2016.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