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향일암에서 만난 일탈
2018년 1월 15일 월요일
지난 주를 강타했던 한파가
뒷모습을 보이는 날
세속의 시간을 던져버리고
향일암 원통보전 처마 밑에 서다.
공영주차장(1시간 무료, 10분 200원)을 지나
무료 주차장에
흰 빛 쏘랭이를 다독여 놓고
향일암을 오른다.
가파르게 오르는 길 옆에서
한치와
홍합과 보리멸을 늘어 놓고
자신들의 삶의 시간들도 나란히 진열해 놓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햇살이 좋으면 좋은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한파가 몰아치면 온 몸으로 맞서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걸음을 막아서는 이곳
매표소.
문화재 관람료 2,000원.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향일암은 문화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곳에 오래 전부터
절이 있었다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건물은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이 아닌가.
그래도 문화재가 맞기는 맞을까.
계단으로 바로 오르는 길은
공사중이라고 막아 놓았다.
도로를 따라 올라오다 보니
이렇게 달마도를 파는 곳이 기다리고 있다.
달마도는
인도 불교의 28대 교주인 달마 대사를
빠르고 대담한 붓질로 그린 것인데
조선 중기의 화가 김명국(金命國)의 그림이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달마도는 분명히
그림이므로
화가가 담으려는 주제가 있을 것이고
주제는 붓을 움직이는 힘이나
구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대상이 불교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무심(無心)’, ‘자비’, ‘공(空)’과 같은
선(禪)의 세계를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에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는 달마도마다
모양이 다르고
붓을 터치한 감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담아 그리는 것이 달마도라면
그려진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
그린 사람의 마음이 핵심일 터,
백의 마음으로
천의 마음으로
그림에 담겨 있는 불심을 느껴보는 것이
달마도를 대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죽었던 달마가 다시 부활했다는 전설로 인해
무엇인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딱 맞아 떨어져
오늘날에는
작품으로서 달마도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액운을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적과 같이 대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김명국이 그렸다는 달마도이다.
이 달마도에는
'보진재초(寶進財招)'라는 글자까지 써 넣었다.
보물이 들어오고 재물을 부른다는 의미로
중국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글자인데
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달마도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딱 들어맞는 그림이 아닐까.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안내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율림재에서부터 산길을 걸어
향일암으로 내려오는 걸음을 걷는다.
사실은 금오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는 곳에
해를 바라본다는
향일암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런 바위 굴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점이
향일암으로 사람들을 몰려들게 하지 않을까.
나는
마음을 닦고 부처의 자비를 담아내야 하는 사찰이
부처가 몸소 보여 준
사랑과 자비를 배워 우리 삶에서 조금이라도
부처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사찰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너나 없이
자신의 소원이나 빌어대는
기복 신앙으로 흐르는 것이 참 거북하다.
바위에 동전을 붙여 놓은 이유가 뭘까.
자신의 소망을 이뤄달라는
일종의 욕심이 아닐까.
교회도 다를 바가 아니다.
신앙은
부처나 예수가 보여 준 사랑과 희생을 통하여
우리들의 삶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런 삶을 실천하기 위해
그 분들을 추앙하고 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단청이 가장 화려한 곳이
바로 이곳 향일암이라고 한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하다.
용의 머리까지 달아 놓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이런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보 316호로 지정된
완주 화암사 극락전이다.
나는 이 절을 제일 좋아한다.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깊숙한 산골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화암사
여느 절처럼
조망이 좋은 곳도 아닌
불명산 자락에 깊이 들어 앉아
외부로 향하는 눈길을
내 안으로만 모으게 하는
꾸미지 않은 시골 아낙같은
화암사가 나는 좋다.
하늘이 푸르고
바다가 푸른
월요일의 향일암은
적당한 소근거림이 있어
고요함의 진수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원효대사가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는 좌선대
해골물을 마시고
깨우쳤다는
원효는 이곳에서
무엇을 화두로 삼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영달을 기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한 뿌리가 되었다는
연리근이라는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느껴본다.
본래 이름은 천수천안관세음이며, 천비천안관음·대비관음이라고도 한다. 많은 손과 눈으로 무한한 자비를 베푼다.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가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된 보살로서 대표적인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천은 광대무변함을 나타내고 천수상은 보통 42개의 손과 27개의 얼굴을 지닌 형상인데, 42개의 손 가운데 합장한 손을 제외한 40개의 손에는 저마다 소지물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950여 개의 손은 광배 상태의 작은 손으로 표현되었다. 서역이나 티베트에는 실제로 1,000개의 손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천수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표시하는데, 특히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모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믿어진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생명을 연장하고 죄를 소멸하며 병을 제거하는 공덕이 있는 관음으로 신앙되어 왔으며, 실제로 1,000개의 손을 지닌 목조 입상이 도쇼다이 사[唐招提寺]에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다음 백과]
바다를,
푸르디 푸른 남해바다를 품고 있는 향일암
이제 나는 등을 돌린다.
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향일암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오고가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으며
상품을 팔고
이야기를 섞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
고노리라는 이름이 참 좋아
한참을 들여다보고
다시 새겨보고
보고보고 또 보고
만져보고
먹어보아도
고노리라는 이름만은 못하다.
갓김치가 최고라며
입에 넣어주는 아주머니의 입담과
남해 한치의 참맛을 보라는 아저씨의 넉살이
등짝에 내려 앉는 햇살만큼이나 따뜻하다.
일출광장에 널려 있는 소원등
해마다 그렇게 빌어대는 소원은 무엇이고
얼마나 이루어질까.
아들딸이 합격하기를 빌었을 것이고
아들딸이 취직하기를 빌었을 것이고
아들딸이 결혼하기를 빌었을 것이고
아들딸이 건강하기를 빌었을 것이다.
무료주차장에서
다시 한 번 돌아다보가
이탈리아 소렌토 못지 않은 곳이 많고
스페인 미하스에 뒤지지 않을 곳이
남해에도 있고
동해에도 있다는 것을 느껴본다.
그들처럼
온통 하얀 색칠을 해 놓았더라면 말이다.
여수 한일관 엑스포점에서 받은 해산물 한정식(특)이다.
식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상에 가득한 음식들
왁자지껄 마음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삶은 살아나고
정도 피어나고
행복도 솟아나는 것이 아닐까.
2018. 01.15. 힘날세상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 낙안읍성에 내려앉는 햇살 (0) | 2018.01.16 |
---|---|
거제 외도 보타니아 (0) | 2016.06.20 |
제주 여행기(2016.01.23-26) (0) | 201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