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07 제6회 중앙일보 국제 마라톤대회 참가기
내가 살아가는 행위
한 번은, 꼭 한 번은 달리고 싶었던 중앙마라톤대회의 결승선에서 한 무리의 새떼가 날아오른다.
4시간을 넘게 달려온 나 또한 그 무리 속으로 날아올라 한 마리 새가 된다. 양쪽 겨드랑이를 추켜 올리는 바람의 자락이 서늘하다. 가벼운 날갯짓을 하며 푸르디 푸른 가을 하늘을 따라 마음껏 비행(飛行)을 한다.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다. 지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흘린 땀방울이 오색영롱한 빛깔을 내며 마음을 채워간다. 이제 나는 결승선을 밟았고, 마라톤은 끝이 난 것이다. 또 한 번의 조용한 울음을 울은 것이다.
경기장은 형형색색으로 차려 입은 참가자들로 가득하다. 저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달릴 것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달리면서 몸을 풀고 있는 사람, 뜨거운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사람, 동호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는 사람, 혼자서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 그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똑같은 것은 오늘의 레이스를 잘 해 보겠다는 것일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주로(走路) 위에 내 마음을 실어 보았다. ‘잘 달릴 수 있을 거야. 즐겁게 달릴 수 있을 거야.’ 워낙 오랜만에 달려보는 풀코스인지라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만 여명의 참가자들 틈에 끼어 들어 출발 준비를 하였다.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지점장님과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하고 있는데 출발 신호가 울린다. 이렇게 2004 중앙마라톤대회는 시작되었다. 거대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주자들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달려 나간다. 서울의 대로(大路)를 달리는 기분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롯데월드를 돌아서면서 주자들의 대열이 흐트러진다. 무엇인가 자신들만의 화두(話頭)를 안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주자들의 발걸음이 힘이 넘친다. 저들의 발걸음처럼 저들의 삶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아니 저들의 힘찬 발걸음이 저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이다.
똑같은 복장을 하고 달리는 부부참가자를 만난다. 햇살에 비친 상의의 빨간색이 참으로 곱다. 부부가 달리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어느 때나 어디서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진안홍삼대회에 참가하였다가 무릎에 부상을 입은 탓에 같이 달리지 못하는 아내를 생각한다. 20년이 넘도록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어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다. 달빛이 쏟아지는 중인리 들판을 달리면서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향한 우리들의 웃음을 가꾸고 있다.
새벽이 나를 깨운 것인지, 내가 새벽을 깨운 것인지 3시가 못되어 잠을 깨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아들의 방문을 열어 본다. 네 활개를 벌리고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2시가 다 되어서 잠자리에 드는 아들녀석이 가엾다. 대학이 무엇인지, 왜 저렇게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글아, 아버지 잘 달리고 올 거야. 너도 힘내.’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마음이 짠하다. 사실 오늘의 마라톤은 아들과의 교감(交感) 속에서 달리는 것이다. 수능시험일과 가장 가까운 날에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아이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아들을 위한 기도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가득 담고 늦가을의 정취(情趣)에 젖어 아름다운 달리기를 하고 싶다. 다리로 달리기보다는 마음으로 달리고 싶은 것이다.
5km를 통과하는데 같이 달려온 안지점장님이 27분이라고 말한다. 3시간 40분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지점장님의 등을 떠밀어 앞으로 보낸다. 늘 그렇듯이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혼자 달리고 싶은 것이다. 길고 긴 거리를 혼자서 달리는 것은 잔잔한 즐거움이다. 내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과 사람들을 불러내어 나란히 달리는 것이야말로 마라톤이 가져다주는 참 맛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을 견디지 못하여 서울로 이사가는 아버지를 따라 돌아서던 중원이의 눈길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연날리기를 하며 뛰어 다니던 들판과, 썰매를 타고 누비고 다니던 얼음판을 두고 떠나는 중원이의 눈물 맺힌 그 눈길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틀림없이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떠났던 중원이. 그러나 중원이는 나의 가슴에 담겨 있을 뿐,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10km를 지나며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이 눈길을 잡아 당긴다. 곱게 단풍이든 산자락이 다소곳한 새색시의 치맛자락 같은 느낌이다. 오늘 레이스는 왠지 느낌이 좋다. 오랫동안 이어진 부상에서 벗어난 기쁨에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어울어져 달리는 즐거움의 두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참으로 길고도 긴 부상의 터널이었다. 오른쪽 발바닥을 파고드는 통증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거의 1년이 넘도록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신발을 벗어 놓아야 했던 심적 고통은 육체적인 아픔보다도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피가 마르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동호회 회원들을 위해 급수봉사를 하면서, 나는 내가 달리는 이유가 지극히 평범한 사실인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나는 내가 달리는 이유를 말할 때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 ‘마음의 고요와 화평’, ‘의지적인 미래와 견실한 삶’ 등 호화스럽고 화려한 수식어구를 붙여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직 달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달리는 것이었다.
15km 지점을 막 지나는데 맞은 편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달려오고 있다. 우리의 기대를 모았던 김이용 선수는 3위로 달리고 있다. 그의 고통스런 얼굴을 보면서 오직 기록과의 싸움만으로 달리는 엘리트 선수들의 마음은 어떠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참으로 고독한 달리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은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물든 곱디 고운 단풍도 바라볼 여유가 없을 것이고, 반대쪽에서 느릿한 발걸음으로 달리면서도 희희낙낙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 같은 아마추어들의 기쁨을 모를 것이다. 노란색 옷을 입고 주로에 늘어서서 급수봉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바라다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전주신흥고등학교 팟팅!” 하얀 손을 들어 물컵을 건네 주던 학생이 힘을 실어 준다. “봉사하는 손길은 언제나 아름답지. 학생 고마워.” “ 아저씨 잘 달리세요.” “그래 열심히 달려야지.” 문득 우리 반 녀석들이 생각난다. 이제 막 입가에 수염발이 잡히기 시작하는 녀석들은 목소리도 굵어지고 체격도 나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세계는 참 순수하고 맑다. 그래서 나는 녀석들을 좋아한다. “선생님, 잘 달리고 오세요. 저희들이 응원할게요.” 해맑은 28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작성해 둔 메시지들을 되새겨 본다. 언제 봐도 정(情)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이다.
반환점으로 향하는 밋밋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햇살은 따갑고 다리 근육도 피로물질이 많이 쌓여가고 있을 것인데 오르막까지 이어지고 보니 주자들에게는 녹록치 않다. 그래도 힘든 발걸음을 다독이며 힘을 실어 본다. 주변에 보이는 아름다운 가을 경치를 따라 여기저기 눈길을 보내며 오르막이라는 생각을 분해하여 허공에 날려보낸다.
엘리트 선수들은 어떨지 모르나 아마추어들은 마라톤 코스에는 오르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힘은 들지만 마라톤을 하겠다고 연습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오르막을 달리는 훈련을 한다.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고 나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황홀할 정도의 짜릿한 기분이 온 몸으로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내가 뛰어 오르던 모랫재에 비하면 오늘 달리는 중앙마라톤대회의 오르막은 오르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가볍게 달려 올라갈 수 있는 아주 밋밋한 오르막이다. 그러나 아무리 밋밋하다고 해도 오르막은 오르막이다.
우리들의 삶에도 오르막은 이어진다. 눈물과 통곡으로 이어지는 오르막도 있고, 약간의 근심어린 표정으로 다가오는 오르막도 있다. 나는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오르막길을 달린다. 육신(肉身)이 힘겨울 정도로 치달아 오르고 나면 정신(情神)이 맑아지는 것을 늘 맛보기 때문이다. 그 맑은 정신은 힘겨운 삶의 오르막을 넘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학생들이 성적문제나 자신의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오르막을 달린다. 어려운 문제는 어려운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땀으로 오른 고갯길에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잡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르막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반환점을 돌았다. 삼각뿔 형태로 서 있는 반환점 표지판을 힘주어 두드려 본다. 텅!하는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이제는 내가 달려온 만큼을 되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순탄하고 즐겁게 달려야 한다. 만약에 후반에 고통스럽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달린다면 그것은 즐거운 마라톤이 아니다.
나의 삶도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는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목소리로 살아야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화로운 색깔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살아야겠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
내리막길을 따라 힘차게 달려가는 주자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빨리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가슴에 담고 있었던 것은 아들 녀석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힘들어하는 아들 녀석과 둘이서 황혼을 걸어 불재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 긴 고갯길을 오르며 자신의 주관을 확고히 가져 절대로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 것을 이야기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더 힘든 일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힘든 일은 힘들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중앙마라톤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을 약속했었다. 황혼의 물결이 일렁이는 고갯마루에 앉아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느끼면서,
30km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물컵을 집어드는 순간 왼쪽 허벅지에 심한 통증이 일면서 근육이 돌처럼 굳어진다. 번호표를 달았던 옷핀을 빼어 허벅지를 찔렀다. 피가 솟으면서 뭉친 근육이 풀어졌다. 급수를 하던 여학생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시 몇 번을 더 찔러 피를 낸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이 괜찮았다. 열번이나 풀코스를 달렸지만 쥐가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달리는 것이 시원찮다. 간간이 이상한 느낌이 전해오긴 했지만 달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다시 35km지점에서 급수를 위해 걸음을 멈추는 순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다시 옷핀으로 찔러 뭉친 근육은 풀었으나 달릴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마라톤이 아니었다. 조금 달리다가 멈추어 서서 옷핀으로 찌르는 일을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는 레이스를 거두야 하겠다는 생각이 짓눌러왔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들과 다짐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험생으로서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아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참가한 대회였기에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완주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이기며 달리자고 스스로 다짐을 한다. 그러나 7분대의 속도로 달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러나 달려야 했다. 달릴 수밖에 없었다.
40km를 지나면서는 거의 걷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정신력으로 극복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발을 내디뎠다.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달린다.
문득 신성리 갈대밭에 갔던 생각이 났다.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갈대는 이제 메마르고 누런 꽃을 이마에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신경림 시인은 그러한 갈대의 울음이야말로 갈대가 살아가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울음이다. 달리기 또한 자신을 향한 울음이다. 울음은 자신에 대한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 마라톤을 통해서 나는 내면세계의 문을 열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울음을 본다. 마라톤은 단순히 달리는 행위만이 아니라 내부에 잠재해 있는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하나의 자기개발 과정인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이제 트랙을 한 바퀴 돌면 길고 긴 여정의 막은 내린다. 먼 길을 달려온 주자들은 이제 자신만의 세레모니를 마련해야 한다. 고통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결승선을 밟는 주자의 포효는 울려 퍼져야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저 결승선을 밟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생각하며 오늘의 마라톤을 마쳐야 할 것인가? 4시간 9분 동안을 달리면서 내가 마음에 담고 달렸던 화두(話頭)는 어떤 모양으로 마무리지어졌단 말인가?
많은 생각으로 어울어진 결승선에는 아들 녀석이 남겨놓은 웃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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