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제 303 차 반야봉 산행기

힘날세상 2014. 5. 16. 09:17

제 303 차 반야봉 산행기

1. 일자 :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2. 동행 : 아내(백두 산악회와 함께)

3. 코스 : 성삼재(10:00) - 노고단 대피소(10:30) - 노고단 고개(10:45) - 돼지평전(11:05) - 피아골 삼거리(11:27) - 임걸령샘터(11:34) - 노루목(12:05) - 반야봉(1,732m 12:40 - 13:30 점심식사) -  삼도봉(14:02) - 화개재(14:27) - 제승대(15:45) - 요룡대(와운마을 입구 16:40) - 반선탐방지원센터(17:00)

4. 시간 : 7시간

5. 지도

 

 

 

 

6. 산길을 걸으며

 

올해는 부끄러운 스승의 날을 맞는다.

수 백 명의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부모들을 기다리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그 가슴저림으로 인해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

아리고 아린 마음을 부등켜 안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산길을 걸으면서

임걸령의 샘터에서

반야봉 꼭대기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

제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40대 중년의 삶을 이어가는 제자

30대 활발한 생활을 펼쳐내고 있는 제자

20대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고민하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제자

그리고 늘 부딪치고 아웅거리지만 풋풋하고 사랑스런 10대의 학생들까지

오늘따라 전화가 빗발친다.

 

오늘 반야봉은 참 춥다.

거기에 앉아 노고단이며

왕시루봉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참 춥다.

그리고 부끄럽다.

 

83년 교단에 선 이래

30년이 넘었지만

나는 정말 한 번도 제대로된 선생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도 못했고

아이들을 품어주지도 못했고

아이들에게 열정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했고

아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고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보지도 못했고

그저 문제 푸는 요령이나 주입하면서

나는 내가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생각해 왔다.

아이들은 진로 문제로 마음을 상하고 있는데

나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라고만 말했고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소통 문제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을 뿐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매년 이렇게 전화를 하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찾아와서는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가 잘못한 것을 모두가 알아버린 때보다

내가 잘못한 것을 남들은 모를 때

그때 나 혼자 돌아보는 지난 시간이 

정말 부끄러운 것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반야봉의 바람을 마주하고

누가 볼까 걱정되는 이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싶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맛없게 만들면

버리고 다시 만들면 된다.

그러나 선생은 

한 번 잘못 가르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9.2km나 되는 뱀사골을 따라 걸으면서

언제나 일관된 모습으로 흘러내리는 골짜기 맑은 물을 보면서

저것이 제대로된 선생의 자세가 아니겠냐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독인다.

어린 아이들이니까

잘못을 하고

어린 아이들이니까

고집을 피우는 것이고

어린 아이들이니까

흔들리는 것이다.

 

조금 더 세상을 더 살고 있는

어른들이 

보듬어 주고

다독여 주어야 한다고 

걸음에 부딪히는 돌부리만큼이나 다짐해본다.

 

학생들 편에 서서 생각해 보는 선생

학생들을 믿어주고 배려해 주는 선생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선생이 되어 보자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

맑은 물과 같은

그런 선생을 꿈꾸며

산을 나선다.

 

 

조용하던 성삼재 탐방지원센터가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오늘 또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서 더러운 속세의 푸념들을 털어 놓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노고단 대피소도 조용하다.

 

이제 지리산은 입산 가능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이 지나면 출입을 못하게 한다.

 

노고단 고개의 돌탑

 

전에 없던 통제소

 

노고단 정상. 한 때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또 출입 시각도 정해 놓고 출입을 통제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10시부터 15시까지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을 뿐더러 지키는 사람들도 없다. 2009년 산행기를 보니 도대체 왜 나무 데크에 울타리까지 쳐 놓은 길을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각에만 출입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섰었는데 그런 불만을 들었는지 지금은 자유롭게 오를 수 있게 되어서 좋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노고단 고개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길. 장터목과 세석 사이의 연하선경과 더불어 걷기 좋은 길이다. 등 뒤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이 참 부드러웠다.

 

돼지 평전에는 철쭉들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돼지 평전에서 바라본 왕시루봉.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저 능선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평일이라서인지 지리산의 산길이 참 홀가분하다. 문득 호남정맥 팔공산 부근에서 맞이한 봄이 생각난다. 새싹은 돋아나고 길에는 오직 봄기운에 흠뻑 젖은 햇살만이 뒬글던 산길. 그런 산길을 지금 지리산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전주 백두 산악회 51명 광주 블랙야크 목요산행팀 40여 명이 들어선 지리산이니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돼지평전을 지나며 돌아온 문수대와 노고단. 문수대에서 뻗어내린 능선을 밟으면 질매재를 거쳐서 왕시루봉으로 이어진다. 물론 통행료가 비싸긴하다.

후미를 챙기며 걷던 백두산 누님이 어느새 따라와 우리를 부른다. 

 

피아골 삼거리. 오른쪽 길은 피아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맑은물이 흘러나오는 임걸령 샘터. 지리산 최고의 샘물이라고 한다. 1976년 대학 1학년 때 곳에서 야영하며 마음에 담아 두었던 달빛과 피아골의 구름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반야봉을 오르는 노루목. 오늘 산행의 초점인 반야봉으로 오른다.

 

반야봉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노고단

 

반야봉 오르는 길에 설치된 철사다리. 이곳을 지나면 절반을 오른 셈이다.

 

철사다리를 지나 바라본 노고단(우)과 왕시루봉(좌)

 

2009년 광복절 한여름에 이곳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블랙야크 100명산 중 69번 째 산에 올랐다.

 

백두산 누님과 함께.

산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 같이 산행을 하는 몇 분들은 정말 좋은 분이다. 나는 형이나 누님이 없기 때문에 사회에서 만나는 선배들이 좋다. 특히 백두산 누님은 마음이 넓고 포근한 분이다. 산행 경력도 대단하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도 놀랍다.  또한 온갖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어 움직이는 식물도감이다.

 

반야봉. 저 금줄을 넘으면 중봉에서 대소골을 거쳐 심원마을로, 심마니 능선을 타고 반선 탐방지원센터로, 이끼폭포를 거쳐 뱀사골 제승대로 내려설 수 있다. 물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오늘도 이끼폭포로 내려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화개재로 내려섰다.

 

삼도봉에서 백두산 누님과 아내.

 

삼도봉에서 본 반야봉. 겨울에 보는 경치도 대단한 봉우리이다.

 

삼도봉에서 본 노고단 능선

 

반야봉에서 본 천왕봉

 

뱀사골로 내려서는 화개재. 예전에 아무 곳이나 야영이 허용되던 시절에 이곳에서 야영하던 생각이 났다.

 

예전의 뱀사골 산장. 지금은 무인 대피소로 긴급시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2009년에는 번호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안내 전화번호가 쓰여져 있어 사용하려면 전화를 하라고 되어 있었다. 만약에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문을 열어 놓았다. 이곳에서 취사를 하거나 잠을 자면 벌금을 왕창 물리겠다는 경고문이 달려 있다.

 

 

이들은 무슨 꽃인가

 

시원한 물이 흘러 내리는 뱀사골 계곡

 

제승대 위 출입금지 안내판. 반야봉에서 금줄을 넘으면 이끼폭포를 거쳐 이곳을 내려온다.  실제로 오늘 이곳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봤다.

 

뱀사골에 살고 있는 햇살

 

산죽의 꽃. 이제 이 꽃이 피면 이 산죽은 생명을 다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산죽은 죽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운 것이다.  

 

 

 

 

와운마을 입구인 오룡대 이제부터 반선까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와운 마을 안내판

 

  매발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2014년 5월 15일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