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 종주기

1구간 영취산 - 수분재 산행기

힘날세상 2010. 10. 28. 14:07

금남호남정맥 1구간 영취산 - 수분재

 

1. 산행일시 : 200731(목요일)

2. 동 행 : 아내

3. 날 씨 : 맑음

4. 산행거리 : 20.55Km 도상거리18.2Km 자동차 주행거리: 150

5. 산행시간 : 7시간 09(휴식 40분 포함)

영취산(09:06) - 무령고개(09:21) - 장안산(10:24) - 947.9(11:43 점심 20) - 960(13:08) - 밀목재(13:27) - 사두봉(14:22 간식 20) - 비구니봉재(15:23) - 당 재(15 53) - 수분재(16:15)

6. 특기사항

1. 산행로가 아주 뚜렷하고 갈림길이 없어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2. 능선상에서 식수를 구할 곳은 시작지점인 무령고개와 중간지점인 밀목재 마을외에는 없다. 중간 샘터 

    는 말라 있었다.

3. 밀목재 마을에서 정맥은 마을을 관통하여 마을 뒤로 보이는 산으로 이어진다.

4. 수분재에서 무령고개로 차량회수를 이용한 이동은 장수 택시를 이용한다. 미터요금으로 22,000 원이

   다. 친절하고 산행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다음 구간을 마치고 신광재에서 수분재까지 이 동할 때 이

   용하려고 한다. 장수 개인택시 063 - 351 - 5454 011 - 652 - 5458 이수용 기사님

 

7. 산행지도

 

 

8. 산행기

1. , 금남호남정맥

 

무령고개 주차장에 840분에 도착하여 등산화를 갈아 신고 845분에 주차장 위에 있는 매점 옆에 난 계단 길을 따라 영취산으로 올라간다. 매점 옆에는 샘도 있어 야영에도 문제가 없겠다. 등산로가 가파른 곳에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놓아서 쉽게 오른다.

15분 정도를 오르니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이다. 북으로 달려가는 대간은 한 조각의 기운을 덜어 호남벌을 싸고 돌게 하였으니 이름하여 호남정맥이다. 영취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모래재 조약봉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터라 영취산에서 모래재까지는 금남 호남정맥이라고 부른다.

백두대간을 알리는 안내판과 산객들의 시그널이 아침햇살을 받고 있다. 그러나 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구름 속으로 흐르고 있는 지리산 주능의 거대한 자태였다.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거쳐 만복대, 수정봉, 중재, 백운산을 돌아오는 대간의 산줄기가 면면하게 이어져, 이 곳 영취산을 지나 육십령을 훌쩍 뛰어넘어 남덕유산을 일으키고 힘차게 달려나간다.

 

 

 

 

 

*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 영취산 정상.

어느 분이 산행 길에 리본을 너무 많이 걸어 놓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여 보면 선답자들이 달아 놓은 리본은 산행의 외로움을 덜어 주고 걷는 길에 대한 확신을 주기도 한다. 꼭 길 안내가 아니더라도 걸려 있는 리본들을 보면서 걷다 보면 그 분들과 같이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 적적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호남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왼쪽으로 섬진강을 보듬고 434km를 에돌아 여수 앞바다 외망포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호남정맥을 밟아나가는 것은 전라도의 산하(山河)를 샅샅이 파헤치는 것이다.

산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품속에 까지 파고들기도 하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언제나 말이 없이 우리들을 내려다 보기도 하지만, 아무런 불평도 자신의 꼭대기를 인간에게 드러내 주기도 한다.

산은 산에서 보아야 한다. 첩첩이 허리를 맞대고 있는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펼쳐내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야 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산에 오르면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그리움도 떠오르고, 잊혀진 시간이나, 다가올 앞날의 모습도 어렴풋이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0906 정맥을 다하는 날까지 산이 가르쳐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빌어보며 아내를 앞세우고 호남 정맥 산행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0915 가파른 내리막길을 10여분 쯤 내려서니 다시 무령고개다. 차 속에 두고 왔던 배낭을 메고 들머리를 찾아 무령고개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 시그널이 바람에 날리며 손짓을 하고 있다. 앞서 가는 아내가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무령고개 들머리. 고개 마루를 지나 오른쪽으로 들머리가 있는데 중간에서 올라간 흔적이 있어 올라갔더니 바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0922 길은 곧바로 평탄한 정맥길로 이어진다. 마치 동네 뒷동산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러운 길이다. 여름에 걷는다면 우거진 숲으로 인해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올라치면, 그냥 주저앉고 싶을 것 같다.

처음부터 급격한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작이 밋밋하여 그런지 발걸음도 가볍다. 아내는 무엇이 즐거운지 앞서서 콧노래를 부르며 잘도 걷는다.

 

 

팔각정 갈림길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전망이 좋은 팔각정이다. 남덕유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가관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927 팔각정 갈림길이다. 팔각정까지 거리가 불과 100여 미터이고, 남덕유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일 것 같아 망설였으나 영취산에서 바라본 것으로 만족하고 왼쪽 장안산 방향으로 발길을 잇는다. 평탄한 길이다. 우리의 인생도 처음에는 누구나 평탄하고 순하게 이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오르막이 다가설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 산행도 아마 그럴 것이다. 중간에 장안산, 947.9, 960, 사두봉 등 제법 굵직굵직한 봉우리를 넘어야 할 것이므로 약간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929 괴목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낡아빠진 벤치 2 개가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괴목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눈길을 주어 본다. 누군가는 이곳으로 내려가기도 했을 것이다. 길은 어디로 향하든 결국 산 밖으로 이어지고 거기에는 사람들이 장안산에 둘러 싸여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괴목 마을 갈림길. 1992년 대통령선거를 하는 날에 이 길을 따라 눈을 밟고 장안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산죽이 양옆으로 도열하고 있는 길을 걷기고 하고 갑자기 전망이 툭 터지는 곳에 올라서기도 하면서 길은 이어진다. 누군가 산죽을 잘라내어 보행이 편하다. 그러나 길은 얼어붙은 눈 위에 낙엽이 덮여 있어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947샘터가 있음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한다.

 

무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처음 만나는 샘터. 그러나 갈수기이라서 그런지 물은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여름에도 그렇게 많이 솟아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전망바위에서 본 지리산 능선. 지리산 주능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장안산이라고 한다. 탐스러운 동부능선과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주능, 만복대를 돌아서 육십령으로 달려오는 대간의 힘찬 용틀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956 지리산의 주능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천왕봉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산줄기의 위용에 한 동안 넋을 잃고 빠져든다. 겹겹이 산이고 첩첩이 산이다. 역시 산은 산에서 보아야 한다. 산 밑에서 보면 이런 그림을 볼 수 없다. 첩첩이 이어지는 산과 산 사이의 골짝에는 알콩달콩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산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키워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산 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안산 정상.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주능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성큼 달려나가는 금남호남정맥의 발자국마다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참으로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958 장안산 정상이 보이는 길을 걷는다. 문득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하는 목월의 시구가 생각난다. 나는 이런 산길을 좋아한다. 숲 속에 묻혀 있는 길보다는 이렇게 가야할 길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길을 걸으면 느낌이 참 좋다. 특히 이런 길의 풍광을 보는 것은 실제로 그 길을 걷는 것보다 더욱 재미가 있다. 운장산 서봉에서 동봉으로 넘어가는 길, 남덕유 서봉에서 남덕유산으로 가는 능선의 잘록한 안부, 소백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나, 만복대로 오르는 푸르디 푸른 초원의 길. 그런 길을 만날 수 없었다면 나는 산행을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1024장안산(1,237m) 정상이다. 이리저리 조망에 눈길을 뺏겨 간식을 먹을 생각도, 물을 마실 겨를도 없이 5분여를 머물렀던 곳이다. 헬리포트를 이루고 있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 이런 까닭에 장안산은 100명산으로 뽑혔나 보다. 오늘 걸어야 하는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표지석 뒤에는 일명 영취산이라고도 하며 해발 1,237m로 장수, 번암, 계남, 장계 등 4개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이 뻗어 전국의 8대 종산 중 제일 광활한 위치를 차지한 소백산맥의 기봉인 호남의 종산이다. 199710월 장수군이라고 써 있다. 누군가 소백산맥 부분은 짓이겨 놓았다. 정맥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소백산맥이라는 말이 거슬리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훼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947.9 . 지도에 백운산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정맥길은 여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1202 947.9봉이다. 지도상 955 봉에서 간식을 먹으며, 20 분 정도 휴식을 하고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하였다.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지나온 장안산 북사면이 흰 눈을 덮고 있는 모습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더니 870 봉에서 왼쪽으로 크게 돌아나간다. 뒤로 두고 오던 장안산을 이제는 왼쪽에 끼고 남쪽으로 걷게 된다.

 

 

 

960봉에 백곰님이 설치한 표지판이 바닥에 뒹글고 있어, 주변의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1308 나뭇가지 사이로 밀목재 마을이 보이는 960 봉에 도착하였다. 뒤돌아보니 남덕유산이 끝까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1327밀목재에 내려선다. 방화동을 정비하면서 형성된 이주민 마을이다. 그런 까닭에 깨끗하고 개성이 넘치는 집들이 약 20여 채가 모여 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정맥길을 이어진다. 삼거리에 있는 샘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아마 여름에는 수량이 풍부할 것이다. 물맛은 참으로 좋았다. 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차단기가 있는 곳에서 마을 뒤로 이어지는 산자락으로 붙었다.

 

 <사진1>

 <사진2>

<사진 3>

밀목재 마을 안내

<사진 1>은 밀목재에 내려서면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다. <사진1>에서 오른쪽 옹벽이 끝나는 지점에 <사진2>의 안내판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우물이 있다. 계속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마을회관이 있고 <사진3>의 집이 나온다. 불과 100여 미터밖에 안 된다. <사진 3>의 자동차가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면 차단기가 있고 집 뒤 숲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1345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에 올라섰다. 발밑으로 장수읍의 평화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햇볕은 따스하지만 바람이 거세다. 산불조심이라고 쓴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건조한 날씨와 발목까지 닿도록 쌓여 있는 낙엽으로 보아 산불이 나면 큰 일이 날 것 같다. 나야 아예 산에 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뜨끔하다.

 

 

 

 

사두봉 정상. 무덤이 한 기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으로 약간의 공터가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 좋지 않다.

 

 

1422 940봉을 넘어 사두봉(蛇頭峰 1014.8m)에 섰다. 무덤이 한 기 있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산죽과 나무로 둘러 싸여 여름에는 신통치 않을 것 같다. 전북 산사랑회에서 세운 표지판에는 봉우두미봉이라고 써있다. 지도상에는 사두봉이라고 되어 있고, 누군가 사두봉이라고 붙여 놓기도 했다. 해바라기를 하며 남은 떡을 먹으며 휴식을 한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제 남은 거리는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다. 20 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출발을 하는데 산죽이 이어진다. 몇 걸음 걷는데 돌탑 같은 것이 서 있고, ‘사두봉 봉수대라고 쓰여진 팻말이 서 있다. 아마 이 봉우리는 봉화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장수읍을 중심으로 이어진 산이나 고갯길이 한꺼번에 전망되는 것을 보면 과연 이곳에 봉화대가 있을 법하다.

1523 882봉을 넘어 내리니 비구니봉재이다. 어떤 지도에는 송계재라고도 나와 있다. 작은 오솔길이 수분리 송계 마을에서 사암리 방화동으로 넘어가고 있을 뿐 아무런 표지도 없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판단하여 비구니봉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는 조선일보사에서 월간 산 별책 시리즈로 발행한 호남 낙동정맥 안내서에 실려 있는 지도인데, 지도상으로 보면 당재로 판단되는 8번 도로를 건너서 다시 690봉을 오른 다음, 다시 8번 도로를 건너야 수분재로 내려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참고로 한 백곰님의 산행기에는 비구니 봉재에서 당재까지 40, 당재에서 수분재까지는 30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백곰님의 걸음이 약간 느리기는 하다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산 밑으로 2차선의 포장도로가 보이고 꼬리를 물 정도는 아니지만 자동차의 통행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지도상으로 보면 수분재에서 방화동으로 이어지는 8번 도로임에 틀림없었다. 도로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산의 형상을 보니 가운데가 잘록한 안부가 보이는 것이 그곳이 당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당재. 수분재에서 방화동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로 장수군에서 관광도로로 이용하기 위하여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있다.

1553 당재에 내려섰다. 이때까지도 이곳이 비구니봉재이거나 아니면 수분재가 비구니봉재인 줄 알았다. 백곰님의 산행기에는 당재를 넘어서 수분재까지 30여분 걸린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여튼 당재에서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 수분재에 이른다. 그러나 마루금은 사진에서 아내가 올라서는 곳으로 이어진다. 이곳을 약 10여 미터 오르면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왼쪽으로 계속되는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수분재 정경. 당재를 넘어 수분재에 내려서기 직전에 본 모습이다. 오른쪽의 주유소와 왼쪽의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1615 수분재에 내려섰다. 당재를 지나 713봉을 넘으면 다시 당재에서 내려오는 임도와 과수원 앞에서 만나는데 이후는 이 길을 따르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안내서가 엉터리라는 결론이다. 참 우습다. 엉터리 안내서를 보고 선답자의 산행기를 의심하였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수분재에 있는 표지석. 이 고개에서 번암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장수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수분령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그들은 대간과 정맥이 물을 가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음 들머리는 과수원을 따라 수분재로 내려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이다. 장수 택시(063-351-5454)를 부르니 10분이 못되어 온다. 무령고개까지는 미터요금으로 22,000원이며 약 30분 정도 걸린다.

   

 

 9. 산길을 걸으며

 

 

    1. 산이 있어 행복하다.

  

산은 

내 주변에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늘 같은 자세로 서 있다.

 

산에는

나무들이 서 있고

그 사이로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나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산으로 들어서고 

 나선다.

 

산을 걸으면

언제나 신선이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신선이 되려고 한다.

산 밖 세상의 속(俗)한 시간들을 벗어 버리고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산이 있어 오른다던 영국의 등산가 조지 말로리의 경지는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산을 뒤집을 듯이 떠들고

불을 피워 술을 마시고

자기만의 세상을 이어가려고 한다.

 

조용한 산행을 하고 싶다.

외로울지라도

묵묵한 발걸음을 디디고 싶고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의 시간을 따라

골짝의 물을 안고 돌아가는

산줄기의 면면한 자세를

배우고 싶다.

마루금을 걸어

세월을 걸어

살아 있는 산을 만나고 싶다.

내 삶의 굽이에 걸맞은

색칠을 하고 싶다.

  

 

2. 산에서 산을 보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솟구칠 힘만을 남겨두고

한 줄기를 떼어 내어 놓으니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은 훌쩍 뛰어 장안산으로 달아나

그 길고 긴

춤사위를 펼쳐낸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지리산은 인자한 할아버지의 자태로

남덕유산은 

가까이 다가와 남해의 외망 포구까지 달려갈 마루금에 힘을 실어 준다.

연보라의 빛으로 일어서는

산하(山河)!

역시

산은 산에서 보아야 한다.

  

 

3. 길은 외롭지 않다.

 

 산에 들어설 때마다

외로움을 느낀다.

한 무리를 이루어 걸어도

아내와 둘이 걸어도

산 속에 혼자 들어도

어느 한 구석에 담겨 있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때로

진득진득한 그리움으로 파고들기도 하는데.

 

진정 

산신령은 있는가

홀로 산행에 나서

밤을 낮삼아 마루금을 이어가는 산객들이

자신들의 발걸음을

끝내 멈추지 않는 것은

누군가 그들의 팔을 끼고

나란히 걸었다고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산에

살고 있는 산신령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날 수 있을까

  

 

4. 산경표는 무엇인가

  

한반도가 

섬이 아니고 반도인 것은

백두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백두산에서

한반도의 기운이 돋아난나고

산경표는 말한다.

대간(大幹)이 있고

대간을 받들어

정맥(正脈)이 팔을 뻗어

강물을 감싼다.

정맥의 산줄기는 더 낮아져

지맥(枝脈)을 이루어

마을까지 내려와 

바람을 일으켜 새들을 기르고

농부들의 꿈을 모아

텃밭에서 파랗게 키워낸다. 

산은 

그 뿌리를

사람 세상의 한 가운데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