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속리산 산행기
* 날짜 : 2005. 8. 27
* 인원 : 아내, 군수님 부부, 황사장
* 코스 : 주차장 - 휴게소 삼거리 - 천황봉 - 비로봉 - 신선대 - 문장대 - 휴게소
* 시간 : 주차장(09:10) - 법주사(09:25) - 삼거리(10:20) - 천황봉(11:50) - 비로봉(점심
12:50) - 신선대(13:30) - 문장대)(14:20) - 주차장(15:50)
이속(離俗)
파란 하늘을 돌아내리는 가을의 노래는 이제 막 여름의 소매 끝을 놓아 버린 우리들의 가슴을 서늘한 손길로 다독이고 있었다. 아직 아침이 오지랖을 거두어들이기 못한 시간인지라, 주변의 경물(景物)은 부스스한 얼굴이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실팍한 힘줄기가 솟아오른다.
주차장을 돌아 나오는 눈길에 매달리는 것은 적당한 넓이로 푸른 웃음을 웃고 있는 진초록의 잔디밭이다. 이제 갓 쏟아져 나온 햇살이 다사롭게 거닐어 한층 푸른빛이 더하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속리산 산행을 위하여 전주에서 7시에 안근수님 차를 타고 가볍게 출발한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챙기고 약속 장소인 우체국 앞으로 갔더니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같이 마라톤을 하는 황선주님도 동행하여 일행은 모두 다섯. 살아가는 이야기와 조금 묵직한 이야기 등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섞으며 경부고속도로를 옥천 IC에서 벗어나 보은읍을 지나니 말티고개이다.
주차장에는 한산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 서둘러 차비를 하고 산행길로 접어드는데 대구 오리온즈 농구단 버스가 서 있다. 안근수님은 김병철 등 몇 몇 선수들의 이름을 들먹이면 좋아한다. 왜 그런지 나이가 들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퍽 떨어진다. 그만큼 세월에 밀려났다는 것인가?
매표소에서 아내가 입장료를 지불한다. 1인당 2,800원이다. 법주사에 있는 문화재 관람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관람여부에 관계없이 입장료를 받아가는 불공정거래이다. 틀림없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언젠가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분리하여 징수하려고 하자 절에서는 산문(山門)을 폐쇄한다고 맞섰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주변의 땅이 사찰소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속세의 더러움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부터 입장료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훌훌 털어버리고 법주사를 둘러본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보았던 절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때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게 보였던 팔상전이며, 돌부처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절은 고즈넉해서 좋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을 시간 여유가 없다. 아쉬운 눈길을 돌려 경내를 나온다.
세심정 삼거리를 향해 오르는데 갑자기 일군(一群)의 젊은이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뛰어오른다. 충남소속 육상 선수들이 단체로 훈련에 나왔다는 것이다. 마음은 그들을 따라 달려 오르건만 차림이 등산복이다 보니 힘차게 달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마라톤! 사실 오늘 산행하는 우리들 모두 같은 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아닌가? 한때 마라톤이 인생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로 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라톤이 아니라 달리기로 목표를 바꾸고 말았다. 물론 허리 디스크 재발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덧 세심정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문장대이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상환암을 거쳐 천황봉이다. 대부분의 산객(山客)들은 왼쪽으로 문장대로 오른다. 미련 없이 오른쪽으로 오르는데 두 골짝 물이 합수하는 지점이어서 제법 넓은 소(沼)를 이루고 있다. 생각같아서는 하루고 이틀이고 머물러 앉아 흘러가는 세월을 보고 싶었다.
천황봉을 오르는 길은 한적하여서 좋다. 오르는 길도 적당하고 주변의 숲 속에서 흘러나오는 늦여름의 노랫소리도 처음으로 속리산에 들어온 산객(山客)들에게는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상환암에서 간식을 먹고 희희낙락거리며 오르는데 갑자기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바위가 길을 턱하니 막아선다. 이름하여 ‘상환석문’. 길은 바위 밑으로 이어진다. 동굴처럼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선경(仙境)이 펼쳐진다. 이런 곳이라면 정말 신선이 기거하였을 듯싶다. 석문을 통과해서 보니 그곳은 하나의 커다란 석실이었다. 넓고 평평한 공간으로 된 조용한 기도처였다.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왼쪽 바위 절벽 위에는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이 누구라도 신선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오르니 천황봉과 비로봉의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천황봉에 올랐다. 볼품없는 작은 봉우리이다. 그래도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을뿐더러 거기에서 조망되는 속리산의 암봉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더라도 자신을 통해서 보여주는 풍광(風光)이 자랑스러우니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백두대간을 밟아간 사람들의 족적은 천황봉을 넘어서 북으로 이어진다. 언젠가 백두대간을 밟을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햇볕은 따갑고 엄청나게 많은 날개미들이 달려들어 도망치듯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비로봉 옆구리를 돌아서 가는데 또 다시 바위가 길을 막는다. 천황석문이다. 그러나 상환석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이다. 경치도 별 것 없고, 모양도 볼품없었다. 오직 배가 고프다는 생각으로 주능선으로 올라붙는다. 간간히 올라오는 산바람의 시원함에 두 팔을 벌려본다. 적당한 자리라고 생각하여 밥상을 차리려다가 마주 오는 젊은이가 있어서 물어보니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기가 막힌 곳이 있다고 한다. 온 정신을 기울여 그곳을 찾았는데 모두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속리산의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이다. 왼쪽으로는 천황봉이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주능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입석대, 신선대, 문장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발밑으로는 깊게 패어진 골짝을 발판으로 이름 모를 작은 암봉들이 고개를 내밀어 이곳이 속세를 떨구어 버린 신선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내가 정성으로 싸온 도시락을 펼친다. 다섯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는데 눈으로 보는 경치에 젖어서인지 남김없이 비운다. 아쉬운 것은 한 잔의 술이었다. 나야 전혀 관계가 없지만 안근수님은 내심 서운한 눈치이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앉아 있었다. 배낭을 꾸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오밀조밀한 암봉들을 돌아 가는데 갑자기 길을 막고 나오는 것은 술집이다. 신선대 휴게소. 잠이 덜깬 듯한 얼굴을 한 아줌마가 막걸리를 한 잔하고 가라고 붙잡는다. 세상에 이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곳에 술집을 허락했단 말인가?
불쾌한 감정을 그 술집에다 내던져 버리고 허위허위 문장대를 향하는데 책을 쌓아놓은 듯한 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어떻게 보면 책바위고 어떻게 보면 떡을 쌓아놓은 듯하다.
어느덧 문장대에 도착했다. 문장대에서 또 다시 놀랐다. 거기에는 거대한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간이 매점도 없어야 할 곳에 저런 대형 음식점을 허가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더 기가막힌 것은 ‘1500미터에서 솟아나는 암반수로 음식을 만듭니다.’ 뭐 이런 식으로 간판을 붙여 놓고는 갈증을 달랠 수 있는 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주인은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연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얼른 발길을 돌려 문장대로 오른다. 문장대에서의 조망은 좋았다. 물결처럼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세속의 모든 것들을 내다버린다. 눈앞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바라보니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언제나 힘이 넘치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하다. 기념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선다. 세심정 휴게소로 내려오기 위해 계곡으로 들어선다. 눈길을 잡아당길만한 풍광은 아니다. 그런데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휴게소라는 술집은 세속을 벗어나 맑은 세상을 느껴보려던 마음에 먹물을 끼얹고 있었다.
서둘러서 내려오니 세심정 휴게소가 보이고 길이 훤하다. 김진아님이 갑자기 달려가자고 제안한다.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를 제외한 네 명은 내달린다. 이제 산길에는 나 혼자 남았다. 갑자기 편안함이 몰려들었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는 듯한 안락감이 밀려온다. 오늘의 산행을 정리하며 옆구리를 붙들고 따라오는 계류를 벗삼아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룰루랄라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산 속에 늘어선 휴게소가 생각나며 마음에 금이 간다.
배낭 끈을 조여 매고 나도 내달리기 시작했다. 산악마라톤과 같은 느낌이다. 대략 20여분은 달린 것 같았다. 매표소를 통과하니 먼저 달려갔던 일행이 나무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대충 씻고 주차장에 와서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손해사정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황선주씨가 자동차 사고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등산의 피로도 잊은 채 안근수님이 차를 몰아 전주에 오니 6시가 넘었다. 황선주씨가 굳이 저녁을 산다고 하여 롯데아파트 옆 신토불이 오리 전문음식점에서 ‘금상첨화’ 정식으로 배불리 먹고 나니 몸도 마음도 긴장이 풀려 느른해진다.
또 다른 산행을 다짐하며 우리는 손을 흔들어 마음을 나누었다. 힘날세상
문장대비에 새겨진 글
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道를 멀리하였고 산은 世俗을 떠나지 않았는데 世俗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속리산 문장대 1054M 구름 속에 갈무리 져 雲藏臺라고 하다가 세조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文藏臺라 했으니 우러러 우주의 장대함을 보고 구부려 品類의 繁盛함을 살핀다는 奇妙의 極致. 정상엔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으니 태초 생명 탄생의 신비를 알려주도다. 동쪽으로 칠형제봉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황봉이 이어졌고 서쪽으로 관음봉 묘봉이 솟았으니 비껴서 낙영산과 도명산이 다가선다. 남쪽 아늑한 곳에 법주사를 앉혀 法脈을 잇게 했으니 빼어난 기품 浩然의 氣槪여 조물주의 조화여. 오! 仙界의 아름다움이여! 박찬선 글. 김정홍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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