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비들의 풍류(風流)와 정취(情趣)를 따라
마라톤 기행 11
선비들의 풍류(風流)와 정취(情趣)를 따라
Y형!
죽록원(竹綠苑)으로 몸을 숨기는 5월의 햇살을 따라, 축제의 흥에 젖은 담양(潭陽) 사람들의 웃음은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푸르디 푸른 빛깔로 돋아납니다. 수 천 개의 얼굴을 하고 매달린 대나무 등은 저마다의 소원을 들고 우리들을 맞이합니다. 그들의 소원을 하나씩 하나씩 더듬어 가다가 발길은 이미 대나무 그늘 속에 파묻혀 숲을 건너는 바람과 더불어 대쪽같은 선비들의 절개(切開)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나무를 일컬어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고 하는 까닭이 선비들의 곧은 절개를 나타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향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까닭도 있는 것 같다고 아내는 말합니다.
담양(潭陽)은 온통 대나무 밭입니다. 대나무 숲에서 해가 솟고, 또한 대나무 숲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나옵니다. 어둠이 시가지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어도 ‘제6회 대나무 축제’의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길거리에는 흥겨운 노래가 넘실거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웃음 띤 얼굴입니다. 그 옛날 거창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죽제품 시장을 돌아다녀 봤습니다만, 중국제품에 밀려 자꾸만 위축된다며 예전의 담양이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이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그리도 여그(담양)는 중국산이 못 들어온당께. 아, 여그가 어디라고. 다 우덜 손이로 맹글어 내는 것이여. 담양이 아직까지는 자존심을 갖고 있는 것이랑께.”
당신 손으로 만든 죽부인만 해도 수를 셀 수가 없다며 담배를 피워 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는 우리 민족의 삶의 일면을 본 것 같았습니다.
밤이 깊었는데도 휘청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삶의 엑센트인지 축제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여관의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삶의 노래 가락을 끌어 안고 잠을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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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콰이어가 품고 있는 새벽은 신선합니다. 진초록의 몸통을 일으켜 여명(黎明)을 깨우고 자신은 곧은 자세로 질서 있게 늘어서서 우리들의 달리기를 내려다봅니다.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메타세콰이어의 행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 긴 그림자를 떨구어 놓고 5월의 노래를 부릅니다.
대나무숲의 향기가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듯한 느낌 속에서 서서히 몸을 풀어 봅니다. 나는 메타세콰이어의 곧은 수형(樹型)을 바라보며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저렇게 곧고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참으로 이 세상은 살아 볼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역시 달리기의 참 맛은 아침에 있습니다. 대나무 박물관을 지나 봉산으로 가는 887번 지방도로로 접어들 무렵 아침 기운이 담양 들녘에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면앙정(俛仰亭)으로 가는 길은 고요, 그 자체입니다. 들녘에는 벌써 하루를 시작한 농부(農夫)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느릿합니다. 시골길을 달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농부(農夫)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잰걸음을 그들은 걷지 않습니다. 넓은 들녘을 배경으로 하여 걷기 때문에 답답한 도시 공간을 걷는 도시 사람들보다 여유롭게 보이는 거라고 아내는 말하지만, 웬지 농촌 사람들은 마음이 넓고 모든 일에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면앙정은 제월봉 자락에 다소곳이 앉아 담양의 들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은 정자(亭子)에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1493~1583)의 풍류(風流)와 치사귀향(致仕歸鄕)의 정취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만감(萬感)이 교차합니다.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나절 자연을 완상(玩賞)하느라고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아름답지 아니하랴. 오늘도 자연을 구경할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아름다운 경치 구경에 쉴 사이가 없는데 이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러 오는 길을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하나의 푸른 명아주 지팡이가 다 못 쓰게 되어 가는구나. - 송순, ‘면앙정가’에서
면앙정의 낡고 갈라진 기둥에 등을 대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내는 송순(宋純)이 극찬한 아름다운 경치를 찾을 수 없다며 돌아섭니다. 그러나 어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그렇게 쉽게 드러나겠습니까? 몇 번이나 계절을 바꾸어 가며 둘러보고 돌아보아야 자연이 가져다주는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 눈에 감탄이 나오는 경치는 눈에는 남아 있을지언정,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는 것입니다. 면앙정 뒤쪽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거송(巨松)을 올려다 보다가 문득 송순(宋純)이 길러낸 수많은 후학(後學)들이 자라나서 저렇게 튼실한 인재(人才)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송강정(松江亭)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낙향하여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에 담아 온 몸으로 노래하였던 곳입니다. 임금을 위하는 마음을 단순한 충성심(忠誠心)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윗 사람을 정성으로 섬겨야 한다는 하나의 가르침으로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올곧은 선비들의 마음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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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속해서 남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서 사거리에서 발길을 잠시 멈추고 목을 축입니다. ‘명옥헌’과 ‘소쇄원(瀟灑園)’ 중 어느 곳을 선택하겠냐고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소쇄원(瀟灑園)의 아름다움을 어찌 택하지 않겠느냐고 반문(反問)하면서 주저없이 소쇄원 쪽으로 달려 나갑니다.
우리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립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달린 거의 모든 시간들을 아내와 같이 달렸습니다. 말간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새벽녘을 달리면서, 눈이 시리도록 쏟아지는 달빛을 가르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안고 좁다랗게 이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봤으며, 이른 새벽 희미하게 남아 있던 어둠이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가던 문경 새재의 한적한 고갯길을 밟으며 세상은 한 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 객창감(客窓感)에 젖어 하룻밤을 보내고 아직 누구도 손대지 않은 새벽을 아내와 같이 달리는 마라톤 기행은 어느 관광 상품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월례 행사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가지 않은 길이 많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나란히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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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息影亭)에서 내려다 보는 광주호(光州湖)의 푸른 물결에 비치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이미 해는 높이 솟았고 마주 보이는 손바닥만한 들녘에는 아침이 농익어 가고 있습니다. 밤새 풀잎에 고이 매달려 밤의 고요를 피워내던 영롱한 이슬방울도 세상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시끄럽고 바쁜 인간들의 시간들이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성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식영정(息影亭)의 그늘에 앉아 성산(星山)의 풍류와 정취(情趣)를 노래한 송강(松江)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얘기해 보았으나, 송강이 노래한 무릉도원의 말갛고 깨끗한 기운은 사람들의 속(俗)한 생각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속세(俗世)의 시․공간을 달려야 합니다. 광주호(光州湖)의 수면을 쓰다듬어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청명(淸明)한 바람을 등에 업고 소쇄원을 향하여 달리는데 웅장하게 서 있는 ‘가사문학관(歌詞文學館)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호남가단(湖南歌團)을 형성하며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가사박물관의 배롱나무 밑에 앉아 달려온 길을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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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정문학(樓亭文學)이라고 말합니다. 887번 지방도로를 따라 저마다의 독특한 자세로 서 있는 정자(亭子), 정자(亭子)마다에 담겨 있는 선비들의 도도한 문학 정신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달리는 중에 만난 정자는 절승(絶勝)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모두 주옥(珠玉)같은 가사작품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면앙정가의 면앙정(俛仰亭),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송강정(松江亭), 성산별곡의 식영정(息影亭)의 마루턱에 앉아 문학은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멀리까지 바라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눈길을 주는 곳마다 우리의 시선(視線)을 가로막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앞길이 훤하게 트여 있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정자(亭子)가 그렇습니다. 눈 앞이 툭 터진 정자에 앉아 드러낸 선비들의 마음을 따라가 보면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바로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공산에 쌓인 낙엽을 북풍이 걷으며 불어, 떼구름을 거느리고 눈까지 몰아 오니, 조물주가 일 꾸미기를 좋아하여 옥으로 꽃을 만들어, 온갖 나무들을 잘도 꾸며 내었구나. 앞 여울물 가리워 얼고 외나무 다리 걸려 있는데, 막대를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늙은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소문내지 마오. 경요굴 은밀한 세계를 찾을 이가 있을까 두렵도다. - 정철, ‘성산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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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이 ‘성산별곡(星山別曲)’에서 겨울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다가, 바로 그 겨울 경치를 자신이 가진 부귀(富貴)라고 말하는 노인의 마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더듬어 보신다면 왜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사문학관을 나서 낮으막한 언덕길을 넘어서니 소쇄원(瀟灑園)입니다. 입구부터 상춘객(賞春客)들이 몰려 와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은 따라 걸어서 올라갑니다. 말간 물이 졸졸 흐르던 시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급한 물살을 일으키고 작고 가느다란 폭포로 변할 즈음에 소박한 정자(亭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소쇄원(瀟灑園)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묻혀 버렸습니다. 푸른 숲에서 풍겨나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서는 더 이른 새벽에 찾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상춘객(賞春客)들 사이로 바라보이는 제월당(濟月堂)은 송시열이 썼다는 힘찬 글씨의 현판(懸板)을 달고 소쇄원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제월당 마루턱에 앉아 내려다보는 광풍각 지붕 위에서 펼쳐지는 아침햇살의 군무(群舞)가 참으로 투명하고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라는 사람이 별서 정원으로 세웠다는 소쇄원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산뜻하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명칭과 딱 맞아 떨어지는 곳으로 풍광(風光)이 좋고 시원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소쇄원 48경(景)을 하나씩 마음에 담아가며 자연(自然)의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선인(先人)들의 맛깔스런 삶을 갈무리하여 봅니다.
소쇄원을 돌아 나오는데 문득 대나무 숲 어디에선가 송강(松江)이 걸어 나올 듯하기도 하고, 제월당(齊月堂) 마루에 술잔을 들고 시를 읊고 있는 면앙정 송순(宋純)의 모습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평상바위에 앉아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담소하고 있는 김인후와 임억령 같은 선비들의 중후한 인품을 만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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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풍류(風流)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남도(南道) 선비들의 정신을 따라 달린 오십 리 길의 여정(旅情)은 탈속(脫俗)의 경지(境地)였습니다. 소쇄원 23경 ‘수계산보(脩階散步)’를 읊은 시를 떠올리다가 속세(俗世)의 한 가운데에서도 탈속(脫俗)의 경지(境地)가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아 마음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澹蕩出塵想 차분히도 속세를 벗어난 마음으로
逍遙階上行 소요하며 섬돌 위를 구애 없이 걷네
吟成閒箇意 노래할 땐 갖가지 생각들 한가해지고
吟了亦忘情 읊고 나면 또 희로애락의 속정 잊혀지네 - 김인후, 瀟灑園 48詠 에서.
2004.4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