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해안을 달리며
동해안을 달리며
바람이 그렇게 거센 소리를 내며 불어 오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바람 소리는 날카롭고 예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미 해가 솟아 오른지 두 시간이 지났건만 새벽부터 투덜거리는 바람 자락은 더욱 거세게 펄럭인다.
2월 22일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교직원들이 설악산 등산에 나설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척산 온천에서 미시령 입구에서 인흥을 거쳐 국도 7호선을 따라 속초항까지 달린 다음 다시 척산온천으로 돌아오는 약 23km를 힘차게 달리는 것이었다. 아침도 조금만 먹고 우리는 모두들 산행에 나선 텅빈 여관방에 뒹글면서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은 그 어느때보다 투명하고 맑다. 우리(회장님과 나)는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9시 20분에 여관을 나섰다.
척산온천장을 나서자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바람의 끝은 날카롭기는 했지만 차겁지는 않았다. 다만 거세게 밀려오기 때문에 눈을 뜨는데 약간의 불편을 가져오고 있었다. 오르막을 올라서자 왼쪽으로 속초 종합운동장이다. 4월 14일 제1회 벚꽃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전주군산대회와 겹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넓기는 넓은가 보다. 동시 다발적으로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면. 아니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는 대회의 난립인가.
지금까지 발표된 대회만 79개이고 보면 이것은 가히 마라톤대회의 홍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어느 대회를 나갈 것인가? 모든 대회가 그렇고 그런 대회인데----.
한화 콘도 앞 내리막을 지나자 미시령이 시작되고 있다. '미시령 18km' 처음에 미시령을 넘겠다는 계획을 바꾸는데 우리는 쉽게 마음의 합일을 이루었다. 우리는 간성 방향을 발길을 돌렸다. 평탄하고 한적한 길이 이어지는가 했는데, 이내 군인들 트럭이 널려 있다. 저마다 꽁무니에 키가 커다란 대포를 하나씩 달고 있다. 이것이 105mm인가, 아니면 155mm인가. 우리는 누구도 자신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비무장지대 안에서만 생활한 나로서는 대포를 한 번도 가까이서 본적이 없었던 탓이다. 용필이형은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저 '저것이 대포로구나.'하는 생각만 가지고 힘차게 달렸다. 바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저 햇살만 따갑게 내려 꽂힐 뿐이다.
우리는 윗옷을 벗어버렸다. 용필이형은 런닝차림이고 나는 반 팔이다. 우리 옆으로는 이름모를 자그마한 개천이 실낱 같은 물줄기를 펼치며 같이 달린다. 개울가에서 갈대가 가느다란 몸을 흐느적거리며 노랗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른쪽 뒤로는 설악의 울산바위가 위용도 당당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며' 그것이 걷는 것이냐, 달리는 것이냐'하고 발걸음을 잡아 챈다.
"이제 몸이 좀 풀리네. 오늘 신나게 달리자."
용필형은 처음으로 소풍가는 아이마냥 들떠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우리의 얼굴과 목덜미를 핥아 댄다. 바람이 이렇게 상쾌한 것이라는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길옆에서 소총을 둘러매고 눈과 코만 내놓은 병사들이 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1979년 9월 우리는 오후 3세만 되면 완전군장에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소양댐 밑까지 왕복하는 10km 구보에 나선 것이다. 군단 직할대인 우리부대와 옆 군단 직할 부대와 무슨 시합을 하는데 그 한 종목이 완전군장 구보이고 나는 어쨌든 분대장으로 구보조에 속하게 되었다. 정말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51분이었다. 사실은 우리 부대장이 임의로 정한 기준이지만. 그정도는 달려야 옆 부대를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달 연습을 하고 나서 27명이 전원 52분에 달려 승리를 거머 쥐었다. 그런데 지금은 50분에 달리는 것도 힘들고 어렵다. 단순히 나이 탓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나는 아직도 달리기에 대한 나의 확고한 철학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이다.그저 남들이 달리니까 나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달리기에 나서면 모든 생각을 거기에 몰두하지만, '이것이다'하고 내세울 만한 생각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며 많은 생각을 하지만 언제나 내가 거두는 것은 쭉정이일 뿐, 한 번도 탐스러운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맡은 학급 아이들을 위한 기도도 해봤고,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얼굴을 붉히기도 해좠지만 내 가슴을 가득히 채워주는 것은 언제나 아무 것도 없었다. 꼭 무엇을 얻기 위해서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올 때 빈 가슴, 빈 손인 것에 언제나 불만족이다.
군대시절 구보는 어떻게는 옆 부대를 이겨야 한다는 일념과, 나의 이마에 붙은 하사 계급장( 벙사들은 깔꾸리라고 하였고 우리 하사들은 50만 촉광에 빛나는 계급장이라고 하곤 했다.)에 대한 체면을 구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날마다 반복되는 한 달여의 무장 구보를 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달리기에 대한 철학을 세우지 못하고 보니 달리기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는 듯하다.그래서 괴롭기도 한 일면도 있다. 우리 아들 녀석은 ' 그냥 달리면 되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시느냐 '고 찔러댄다. 어쩌면 아들 말대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이 뭐 별것이더냐? 인생이 뭐 별것이더냐?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분명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어느덧 바닷가로 나섰다.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것이 나타났다. 나중에 생각하니 속초시를 우회하여 강릉으로 내려가는 새로 생긴 도로이다. 우리는 구 도로로 들어었다. 속초시가 시작되는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서자 속초시가 한 눈에 보인다. 왼쪽으로 펼쳐진 푸른 동해.
동해는 살아 있었다.
시퍼렇게 살아서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다가 울릉도를 만들고 독도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바다이고 우리의 마음이다. 그 품안에서 터져나오는 비릿하면서도 생생한 숱한 함성들. 어부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육지에서 불어간 바람 자락이 넉넉히 덮을 수 있는 곳. 거기에 동해 바다가 있었다. 아침이면 곱게 단장한 붉은 입술로 태양을 밀어 올리고 밤이면 설악의 그림자를 안고 자맥질하는 동해.
속초시 중심가를 달리는 용필이 형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빠르다. 턱에 숨이 닿을 듯한 속도이다. 나는 겨우 따라 붙을 수가 있었다. 기를 쓰고 나란히 달리본다. 대체 무엇이 저렇게 강하게 우리를 흡인하고 있다는 것이냐? 길가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어떤 여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속초시를 벗어나서 척산 온천으로 올라가는 4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도로 양 옆에 씨름 선수 팔뚝만한 벚나무 가지를 흔들며 질풍노도가 밀려온다.
바람.
지금까지 감쪽같이 어디론가 숨어 버렸던 바람이 모두 그곳에 모여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슴팍을 밀어제치며 완강히 저항을 한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전전이 잘 안된다.
" 작년 서울대회가 이랬어. 그래도 그때보다 차갑지는 않네. 정말 지독한 바람이군"
용필이 형이 뭉쳐 두었던 작년의 한강의 바람을 끄집어 낸다. 그래도 런닝 차림으로 잘도 달린다. 어떻게 호흡이 거칠어지지도 않는다.
이제 빨간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척산 온천장'이 마지막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정한 얼굴로 손짓을 한다. 여관 입구에 붙여 놓은 플래카드가 떨어질 듯 펄럭이며 우리는 맞이한다.
' 제1회 속초 벚꽃 마라톤대회 2002. 4. 14. 속초 종합운동장'
우리는 편안한 마음의 끝을 붙잡으며 2시간 20분 동안 공유했던 마음을 풀어 따끈한 온천탕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2002. 2.22